[스포없는리뷰] 차포 뗀 이쑤시개 ‘7년의 밤’

입력 2018-03-31 09:00  


[김영재 기자] 3월28일 ‘7년의 밤’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7년의 밤’은?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2.8/5)

2월21일 열린 영화 ‘궁합’ 언론시사회로 기억한다. 상영에 앞서 CJ엔터테인먼트는 마치 대형 콘서트의 오프닝 게스트처럼 ‘7년의 밤(감독 추창민)’ 예고편을 수백 좌석에 빽빽이 자리한 영화 관계자에게 선보였다. 그간 CJ엔터테인먼트 보석함 속 만년 개봉 대기작으로 손가락질 받아온 ‘7년의 밤’과의 첫 만남은 매우 강렬했다. ‘강렬’이란 단어조차 한 줌의 재가 될 정도로 강렬한 만남. 중심에는 딸의 죽음에 분개하는 오영제 역의 장동건이 있었다.

최현수(류승룡)는 운전 중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를 차로 치고 만다. 세령마을 댐 관리 팀장 부임을 앞두고 사택을 보러 가는 날 발생한 불상사다. 음주 운전 때문일까. 아니면 짙은 안개 때문일까. 결국 그는 한 순간의 실수를 시체 유기라는 고의로 봉합한다. 대형 병원의 원장이자 마을 유지 오영제(장동건)는 물속에서 건져진 딸을 보고 절규한다. “이런다고 세령이가 살아 돌아와? 어떤 놈이 그랬는지 찾아서 똑같이 갚아줘야지.” 악마로 묘사되는 오영제의, 세상을 무너뜨린 최현수. 되돌릴 수 없는 7년 전 밤은 7년간 이어질 복수가 된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이 영화가 지난해부터 꾸준히 계속된 ‘소설 원작 영화’라는 점이다. 언뜻 영화 ‘태백산맥’ ‘서편제’ 등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소설의 영화화는 충무로의 새로울 것 없는 밥벌이다. 하지만 지난해 개봉한 원작 기반 영화 ‘남한산성’과 ‘살인자의 기억법’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을 떠올려보면, ‘7년의 밤’을 은막에 옮기는 일은 어떤 흐름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기폭제 역할을 기대하게끔 한다. 더군다나 ‘7년의 밤’은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100쇄를 돌파한 국내 서점가 최정상 인기 소설. 책을 미리 읽은 소설 팬이나 영화를 기다리는 시네필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7년의 밤’은 ‘소설 원작 영화’는 소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상식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데 제 몫을 할 뿐이다. 앞서 재가 될 정도의 강렬함을 ‘7년의 밤’ 예고편에서 느꼈다고 소개했던 바 있다. 소설 ‘7년의 밤’ 역시 예고편 못지않게 강렬한 작품이다. 소설 속 오영제는 ‘시커멓게 확대된 동공, 근육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팽팽한 어깨, 남자는 행동할 태세를 갖춘 맹수 같았다’로 묘사되는 인물. 갈등을 휘젓는 이를 핸드 믹서기에 비유하자면 소설의 오영제는 분명 믹서기다. 그리고 반죽은 최현수, 안승환, 최서원, 강은주, 문하영이다.

그러나 영화 ‘7년의 밤’은 믹서기만 요란하게 돌 뿐이다. 오영제가 극을 휘젓고 최현수가 이리저리 휩쓸리지만, 그 밖의 등장인물은 활약이 없다. 믹서기가 믹싱 보울에 부딪혀 요란한 파열음을 낸다. 반죽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을 구워도 요기 해결이 어렵다.

물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추창민 감독은 그가 기울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원작 팬이라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각색이 영화를 뒤덮고 있다. 최현수의 마티즈가 프라이드로 변경된 것은 각색을 알리는 사소한 알림이다. 소설을 안 읽은 관객이 영화 관람 후 고개를 갸우뚱하는 불상사가 적어도 ‘7년의 밤’에는 없다. 여기에 장동건, 류승룡의 호연이 어우러지니 ‘7년의 밤’은 소설과 분리된 하나의 완성된 영화가 된다.

원작에서 오영제는 잘생긴 편백 나무를 한 그루 베어와 이쑤시개만 한 나뭇개비로 만든다. 그리고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의 결과물을 가족에게 소개한다. 추창민 감독 각색의 문제점은 ‘7년의 밤’이란 한 그루 나무를 오영제가 그러했듯 잘게 쪼갠 것에 있다.

기자는 이를 차포(車包)를 뗐다고 표현하고 싶다. 각 등장인물의 서사가 얼마나 잘게 묘사되어 있는가. 서점가에 진열된 소설이 베스트셀러 칸에 진열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소설 ‘7년의 밤’은 포수 출신 최현수, 소설가이자 대필 작가 안승환, 잠수부 최서원 개개의 서사가 뭉치면서 파괴력을 이끌어냈다. 교통사고로 죽은 딸의 아버지가 사이코패스더라. 흥미롭지만 그 자체로 완성될 수 없는 한 줄이다. ‘7년의 밤’은 지난 2013년 조사 결과 ‘영화로 옮겨지질 바라는 한국의 원작’ 1위로 손꼽힌 검증된 명작이다. 그리고 검증된 재미는 각색 난이도를 높이며 감독이 감당할 무거운 짐이 됐다.

이쑤시개가 된 ‘7년의 밤’이 지향하는 바는 “피의 대물림”의 절단이다. 언론시사회에서 추창민 감독은 “어린 최서원에게는 세 명의 아버지가 있다. 낳아준 아버지 최현수, 힘들게 하는 아버지 오영제, 지켜주는 아버지 안승환”이라며, “좋지 않은 피를 갖고 태어나 어려운 삶을 이어온 이가 그 피의 대물림을 끊고 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마지막에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했다. 거목으로 여겨지던 소설 ‘7년의 밤’이 왜 쪼개졌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는 정유정 작가 역시 원작에서 짚었던 바 있는 부분이다.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쓸고 갔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서... 넌 아니기를 바란 거야.”,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행나무, 2011) 中》.
새로움이 반감(半減)된다.

사이코패스 묘사에 수반되는 장동건의 연기는 눈빛 등 여러 요소가 이번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M자 탈모 분장 투혼 외에도 그간 영화 ‘우는 남자’ ‘브이아이피’로 일관성이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장동건이 완성되는 모양새다. 과거 ‘우는 남자’ 개봉 당시 혹자는 한 번 더 독한 연기를 하면 그의 경력에 정점을 찍을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 격려를 건넸다. 오영제 연기가 장동건 정점의 연기는 아니다. 하지만 들개 같은 킬러, 현실적 국정원 요원 다음에 자리한 부정(父情)의 사이코패스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장동건 3부작’의 끝으로 다가온다.

인터뷰에서 장동건은 “오영제는 변호사 변론이 가능한 죄를, 선이라고 생각되는 최현수는 변론도 불가능한 죄를 짓는다. 우리가 알던 선악의 (분간이 어렵다.)”라고 했다. 선악 분간이 어려운 것은 모호하다는 말로 치환된다. 그리고 모호함은 극중 인물을 설명하는 도구이자 영화 ‘7년의 밤’이 가진 특징이다. 직설적인 장동건의 연기가 빛나는 데는 함의를 찾아야 하는 모호함이 일정 부분 몫을 차지한다. 새삼 영화 ‘쓰리 빌보드’ 속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할 뿐이다’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참 쉬운 메시지가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어렵고 복잡한 영화가 꼭 좋은 영화는 아니다. 3월28일 개봉. 15세 관람가.(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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