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기자의 설] ‘하트시그널2’ ‘선다방’ 사랑을 VR 하다

입력 2018-04-13 09:00   수정 2018-04-18 15:50


[김영재 기자] 첫 번째 설(舌)은 ‘레디 플레이어 원’ ‘하트시그널’ ‘선다방’으로 이야기를 꾸려본다. 미래는 현재를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트시그널’과 ‘선다방’은 2018년 최선의 가상 현실이다.

서기 2045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속 지구는 식량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는 흔한 디스토피아다. 극심한 빈부 격차는 덤. 이 가운데 가상 현실(이하 VR) ‘오아시스’는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곳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으며, 어디든 갈 수 있는 ‘오아시스’를 통해 대중은 삶의 갈증을 해소한다. 현실의 나는 골방에 있지만, ‘오아시스’의 나는 싸우기 위해 태어난 복서이자 관객의 탄성을 부르는 폴 댄서다.

2018년과 2045년 사이에는 27년이라는 간극이 있다. 작품과 연계된 한 행사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이길행 본부장은 극중 ‘오아시스’와 같은 완벽한 VR은 약 2040년 쯤 구현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VR은 무엇일까. 이미 삼성, HTC, 소니 등 대다수 유명 전자 회사가 VR 시장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구글은 골판지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VR을 즐길 수 있는 도면을 배포 중이다. 미디어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아재들의 퀴즈쇼 tvN ‘시간을 달리는 남자’에서 출연진은 VR 기기를 이용해 ‘오아시스’스러운 비현실적 체험을 했다. 하지만 실제의 대체보다 온 몸을 이용한 체감형 게임에 가까웠다.

2040년 완벽한 VR과 2018년 게임형 VR. 그 사이에서 VR을 체험할 수 있는 지금의 도구는 결국 거실 텔레비전(이하 TV)이다. 시각과 청각만 만족시키는 TV는 불완전한 VR이다. 그럼에도 체감형 게임 이상의 감정 이입을 불러 모은다. 최근의 TV는 VR이 더욱 실감나도록 다른 시도를 노력 중이다. 무대가 일터인 기존 직업군 대신 비(非)연예인을 매체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 또한, 보편적 삶을 살고 있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주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채널A ‘하트시그널’과 tvN ‘선다방’은 비연예인이 사랑을 나누는 대표 예다. 먼저 ‘하트시그널’은 시청자의 높은 호응에 힘입어 3월부터 시즌2가 방송 중이다. 과거의 TV가 남녀 연예인의 가상 결혼으로 사랑을 VR 했다면, ‘하트시그널’은 비연예인의 ‘썸’으로 사랑을 VR 한다. 비연예인의 출연은 실보다 득이 많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신선함과 솔직함은 가상이되 가상이 아닌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외국계 회사에 재직 중인 오영주는 정말 의상디자인학과 4학년 임현주에게 질투를 느꼈을까. 임현주는 실제로 일식집 셰프 김현우에게 마음이 있어서 본인도 모르게 몸을 배배 꼬며 ‘역대 최강 배배 시그널’을 보냈을까. 알 길은 없다. 대본을 주장하고 싶은 바는 아니다. 다만 ‘외국계 회사’ ‘대학교 4학년’ 등의 배경은 ‘방송을 업으로 삼지 않는다’로 인식된다. 사랑이 진실처럼 느껴지게끔 돕는다.

가수 윤종신, 작사가 김이나 등의 패널은 안방극장이 VR에 집중하도록 돕는 일등 공신이다. 4회에서 김현우는 “물티슈 쓸래?”라며 물티슈 포장을 뜯어 임현주에게 건넨다. 이에 윤종신은 “물티슈 권하는 남자 드물다”라고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임현주의 애교에 김현우가 웃음을 터뜨리자 이상민은 “심장병 걸렸다. 내가 김현우라면 난 병원 갔다”라는 과장으로 시청자를 웃게 한다.

누구나 가능한 첨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재웅 정신과 전문의는 임현주가 김현우의 팔꿈치를 잡아끌자 “팔꿈치 효과다. 신경이 둔감한 팔꿈치로 접촉하면 부담감 없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라고 연애 팁을 전한다.


‘선다방’은 보다 현실적인 VR이다. 카페지기 가수 이적은 “진지하게 다가서는 의미에서 이름이 ‘선다방’”이라며 초점이 ‘썸’ 말고 가볍지 않은 사랑에 맞춰져 있음을 강조한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서울시 삼청동 어딘가의 ‘선다방’은 시청자를 맞선의 현장으로 이끈다.

출연진의 면면도 더욱 현실적이다. 오후 5시에 ‘선다방’을 방문한 ‘5시 남’은 다수의 사업체를 운영하느라 6년째 솔로인 CEO다. 그는 “사랑은 교통 사고처럼 온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무사고 5년이다”라며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앞자리에 마주한 ‘5시 녀’는 “나도 그랬다. 운명론자처럼 항상 왕자님을 기다렸다. 인연이 안 오더라”라는 말로 맞장구를 친다. 이적 등이 ‘선다방’의 흥을 띄운다면, 노총각과 운명론자는 실제 맞선 현장으로 설렘을 VR 한다.

오후 7시에 ‘선다방’을 방문한 광고 PD와 간호사는 100세 시대와 결혼 제도의 공존을 논한다. 개성 강한 연애에 지쳐 안정된 연애를 꿈꾸는 ‘7시 남’이 뭐가 제일 불안하냐고 묻자, 통통 튀는 매력의 9년 차 간호사 ‘7시 녀’는 “지금 100세 시대다. 70년을 같이 사는 셈이다. 동반자를 잘 선택한 것인지 불안감이 있을 듯하다”라고 걱정을 토로한다.

맞선 남녀의 성공적 맞선을 위해 분주히 노력하는 이적, 배우 유인나, 방송인 양세형 등의 말은 ‘선다방’의 색채를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 서로 웃음이 터진 4시 맞선 남녀의 대화를 보며 이적은 “생각보다 ‘꽁냥꽁냥’하다”, 유인나는 “둘이 진짜 잘 맞는 느낌이다”, 양세형은 “둘 다 몸이 앞으로 와 있다”라고 각자의 감상을 보탠다. VR을 체험 중인 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남자와 여자가 짝을 찾고 싶은 마음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유인나의 한마디는 VR로 연애 감정을 심폐 소생하는 TV 너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시곗바늘을 돌려보자. ‘하트시그널’ ‘선다방’ 등이 촉감과 체온을 느낄 수 있는 VR로 진화한다면 과연 VR은 실제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아르테미스(올리비아 쿡)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넌 가짜를 사랑하고 있어.” 가짜 언급은 또 한 번 등장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결국 가상은 현실을 대체할 수 없다고 힘준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대한민국 N포 세대에게 ‘하트시그널’과 ‘선다방’의 사랑은 시청 환경만 갖춘다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사랑이다. 동시에 70대 노감독이 스크린에서 지적했듯 전원을 끄면 사라지는 쉬운 사랑이다. 미래의 기술은 아직 아득하다. 그러나 현재에도 미래에도 세상의 순리는 동일하다.

‘선다방’의 오프닝곡은 밴드 시티즌스(Citizens)!의 ‘트루 로맨스(True Romance)’다. ‘트루 로맨스’는 ‘진정한 사랑’을 뜻한다. ‘하트시그널’의 길게 보는 사랑도 ‘선다방’의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모두 진정한 사랑이다. 실재하는 사람 간의 감정 교류가 진짜가 아니면 무엇일까. 반면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고 체험하는 타인의 감정은 공감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사람과 사람이 아바타로 만나면 이야기가 다르다고? 이미 아르테미스가 말했지 않은가. 주인공은 아르테미스라는 아바타, 즉 껍데기를 사랑할 뿐이라고.

‘레디 플레이어 원’ 원작자 어니스트 클라인은 “적당히 절제한다면 VR의 현실 도피는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요소”라고 했다. 그 또한 ‘대체’ 말고 ‘도피’를 언급했다. 뭐든지 적정선이 중요하다. 그들의 사랑은 나의 사랑이 아니다. ‘트루 로맨스’에 응원은 건네지만 몰입은 하지 않겠다. 때 아닌 꽃샘 추위가 와도 벚꽃 축제는 계속된다. VR을 벗고 현실로 나가자. 외로움을 달래줄 방법은 가상 체험이 아니다. 아바타 대신 나를 전면에 내세우는 행동이다.(사진출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2 캡처, tvN ‘선다방’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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