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5월9일 개봉작 ‘레슬러’ 귀보 役
유해진은 반전(反轉)과 밀접한 배우다. 영화 ‘럭키’에서 그는 킬러 형욱 역을 맡아 ‘유해진이 킬러를?’이란 놀라움을 모았다. 반전은 극중까지 이어졌다. 119 대원 리나는 주민등록증에 의지해 자신을 84년생이라고 소개하는 형욱을 보고 “대박”을 외친다. 내외가 반전인 배우는 2018년 또 한 번 반전을 안긴다. ‘공조’부터 ‘택시운전사’ ‘1987’까지 거대 자본 혹은 거대한 역사에 몸을 맡긴 그의 신작은, 레슬러 아들을 뒷바라지 하는 어느 아빠의 이야기다. 아들 성웅(김민재)과 평생 같이 살 거라고 이야기하는 ‘아들바라기’ 귀보는 어쩌면 관객이 익히 상상할 수 있는 유해진과 딱 맞아 떨어지는 역할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가 그의 애창곡이라고 말하는 귀보와, “벤 E. 킹의 ‘스탠 바이 미(Stand by Me)’를 좋아한다. 간주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라고 하는 유해진 사이의 간극은 배우가 또 어떤 노력으로 그 사이를 메울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생성한다. 날씨마저 반전이다. 마른 하늘에 우박이 떨어지는 5월의 어느 날 그를 만났다.
-장성한 아들의, 아빠를 연기했다. 처음 아닌가?
나이 먹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다. 만약에 어색하거나 좀 그랬다면 “(김)민재가 몇 살인데 그게 말이 돼?”라고 하셨을 테다. 그런데 그런 말은 하나도 없더라. 결혼을 일찍 해야 민재 같은 나이의 아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20대 초반에 결혼해야 가능하겠거니’ 했는데, 20대 후반에 결혼했어도 민재 또래 아들이 있겠더라.
-레슬러 연기가 어려웠을 듯하다.
귀보는 전직 레슬링 선수다. 전직 아닌가. 나는 (김)민재에 비하면 흉내만 냈다. 정말 힘든 운동이 레슬링이다. 흉내 내는 것조차 힘든 운동이더라. 진짜 서로 살을 부딪쳐서 에너지를 쓰는데, 거기에 기술까지 배우려니 정말 힘들었다. 여름에 한국체대(한국체육대학교)에서 배웠다. 잠깐 했는데 땀이 엄청 나더라. 평소에 운동을 거르지 않는 편이라서 ‘그냥 하겠지’ 했는데, 정말 쉽지 않더라. 난 잠깐 했고 민재가 몇 달간 고생이 많았다.
-귀보를 짝사랑하는 윗집 딸 가영(이성경)의 비중이 꽤 크다.
귀보 엄마(나문희)가 귀보에게 잔소리하는 것도 사랑이고, 귀보가 성웅이한테 뭐라고 하는 것도 사랑이고, 어떤 때는 영화가 짝사랑 이야기로 다가오더라. 가영의 경우에는 어렸을 때 학교 선생님 짝사랑하는 것과 같은 외사랑이다. 아마 그 사랑이 가영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일 테다. 그렇지만 귀보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다.
-친근한 외모를 매개로 여러 반전을 선보여 왔다. 단독 주연작에선 그 반전이 더 돋보였다. 귀보는 두 여자를 다투게 하는 이른바 옴므 파탈이다.
그것에 포커스를 두진 않았다. 어떤 분께서 귀보의 매력이 뭔지 물어보시더라. 사실 한 번도 생각했던 적 없는 부분이다. 영화 속 인물 아닌가.
-2017년 관객을 두 번이나 울렸다.
출연한 많은 분들께서 그 큰 울림에 공헌하셨다. 나는 그중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겸손한 답 아닌가?) 그런데 그게 맞는 얘기 아닌가. 두 인물(황태술, 한병용) 다 우리의 소중한 이들이다. 그런 인물을 맡겨주셔서 고마웠다.
2017년은 유해진의 해였다. 지난해 그는 세 편의 영화 ‘공조’(781만), ‘택시운전사’(1218만), ‘1987’(723만)로 총 2722만 관객을 동원하며 유해진 이름 석 자를 보다 강렬히 관객에게 각인시켰다. 장르도 다양했다. ‘공조’가 대한민국 아주 평범한 형사의 액션 코미디였다면, ‘택시운전사’ ‘1987’은 사회의 잊을 수 없는 기억 ‘5.18 민주화 운동’과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스크린 위에 옮긴 실화 바탕 드라마였다. 배우의 연기는 실화를 각색한 가상의 인물 황태술과 한병용을 관객이 실제처럼 받아들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양아치1로 출연했던 바 있다. 이후 약 20년간 단역, 조연, 주조연을 거처 지금의 자리에 다다랐다. ‘레슬러’에서 귀보는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없으면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한다.
연기(演技)가 떠오른다. 내가 연극할 때만 해도 배우를 외모로 평가하곤 했다. 외모에 포커스가 가는 때였고,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는가?
자주 돌이켜본다. 고향 후배 중에 연기하는 친구들이 있다. 회사 사람 아닌, 관객 아닌 그들과 함께 일상을 나눈다. 막말해도 되고, 술 취해도 되는 친구들이다.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그 친구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시절로 가곤 한다.
-현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법도 하다.
자리를 지킨다는 부담보다 극장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보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크다. 믿고 오시는 분들께 그만한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 그 무게가 항상 있다.
영화 ‘레슬러’는 전직 레슬러에서 ‘프로 살림러’로 변신한 살림 9단 아들 바보 귀보 씨의 평화롭던 일상이 유쾌하게 뒤집히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5월9일부터 상영 중이다.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180만 명. 총제작비 72억 원.(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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