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안희정은 처벌 받을 줄 알았습니다!”
14일 오후 9시경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 모여든 300여명을 관통하는 정서가 그랬다. 피해자들이 애써 용기를 그러모아 목소리 낸 미투(METOO)가, 정당한 판단을 받지 못했다는 분노가 지배적이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에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 등 미투·여성단체는 사법부 규탄 시위를 밤늦게까지 이어갔다.
성폭력 고발 경험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안희정에 대한 미투처럼 세간의 높은 관심을 받고 다툼의 여지도 거의 없는 사건에 어떻게 무죄가 나올 수 있느냐”며 “이런데도 또 아무렇지 않게 학교와 직장을 가고 거리를 걸어야 하는 내일이 걱정된다”고 발언했다.
대표적 미투 폭로인 안 전 지사가 무죄 판결을 받은 데 대해 “굉장한 분노와 함께 무기력함을 느낀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고 했다.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묻어났다.
여성단체 ‘페미당당’에서 활동한다는 한 여성도 “오늘 점심 시간에 안희정 무죄 뉴스를 보고 ‘위력에 의한 폭력’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미투가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 사건은 정말 유죄가 나올 줄 알았다”며 허탈해했다.
이어 “피해자 스스로만을 생각한다면 조용히 잊고, 덮고 넘어가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겪은 일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가해자는 감옥으로 가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단순명료한 일이 이뤄지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성폭력 가해자 제대로 처벌하라” “안희정은 유죄다, 무죄가 아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사법부 규탄과 안 전 지사 처벌을 강력 요구했다. ‘사법부의 판결을 규탄한다’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 따위의 피켓과 현수막도 곳곳에 보였다.
시위 참가자는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남성 출입과 집회 참가를 제한하지 않았다. 여성 참가자 신상과 발언도 본인 동의를 얻어 공개했다.
이날 재판부는 김지은 전 충남도청 정무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은 안 전 지사의 1심 선고공판에서 “위력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저항을 곤란하게 만드는 강제력이 행사된 구체적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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