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속도 결정,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달려
-친환경 제품 낮은 수익성, 변화 속도 늦춰
"화석연료 중심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마차(馬車)를 대체하자 영국에선 마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붉은 깃발 법(Red Flag Act)'을 만들었다. 그 결과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독일과 미국에 뒤처졌다. 결국 규제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언급한 내용이다. 이어 "제도가 신산업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 실제 이 과정을 겪었던 영국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독일이나 프랑스 대비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경쟁력은 '제품'이 아니라 공장의 '생산성'이었다. 비가 오면 일을 하지 않고, 안개가 끼면 컨디션 문제로 현장 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근무를 거절했던 '영국병'이 원인이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출생한 자동차회사의 소유권은 다른 나라 기업으로 넘어갔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인도 타타그룹이,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등은 BMW그룹에 편입됐다. 복스홀도 최근 푸조시트로엥(PSA)의 둥지로 옮겼다.
하지만 영국은 이를 자동차산업의 위기로 평가하지 않았다. 소유권을 모두 해외 기업으로 넘긴 후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차피 해당 기업은 여전히 영국에 남아 있고, 영국 사람들이 일을 하며, 유럽의 다른 나라 소비자도 영국이 만든 자동차를 구입하고 있어서다. 따라서 영국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영국 내 자동차기업의 소유권이 아니라 개발과 생산을 어디서 하느냐가 과제로 떠올랐고 공장은 생산 대수를 늘리는 게 최우선이었다.
이를 위해 사용한 방법이 해외 기업의 적극 유치였다. 이들의 영국 진출을 독려하되 미래 첨단 기술은 무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영국 내 기업들에겐 미래 자동차산업에 필요한 기술 개발 자금을 대주며 개발을 유도해왔다. 실제 지난 2009년 정부 주도로 '자동차위원회(Automotive Council)'를 만든 배경이다. 수송 부문에서 '탄소저감'이 된다면 소재, IT, 제조, 소프트웨어, 심지어 제도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나누지 않고 미래 수송 부문 경쟁력 향상을 위한 결과물을 확보했다. 그리고 여기서 확보된 기술은 영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협업 기회를 열었다. 한 마디로 해외 기업은 자본만 투자해 공장을 설립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영국 내 완성차기업과 연결시켜 납품도 지원한다.
이처럼 일찌감치 수송 부문에서 기술 주도의 4차 산업 혁명을 준비해 온 만큼 영국은 서둘러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의회가 2032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아예 금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배경이다. 당초 금지를 천명했던 2040년보다 8년 앞당겼다. 어차피 '전동화(Electrification)' 기반의 이동 수단 시장으로 넘어간다면 시기적으로 앞서 가자는 게 영국 정부의 의지다.
물론 여전히 EV보다 내연기관에서 수익을 거두는 자동차회사들은 반대한다. SMMT(영국자동차협회)는 2040년 내연기관 승용차 및 밴의 판매를 금지하려는 목표 자체도 불가능한데 이를 8년 당기는 것은 정치적 구호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정부 목표가 달성되려면 연간 200만대의 내연기관차 수요가 10년 만에 모두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전기차로 수익을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구조인 데다 정부마저 EV 지원금을 줄이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하다.
그럼에도 영국 자동차산업 내 전반적인 인식은 지금과 같은 저탄소 혁명의 속도가 유지된다면 미래 이동 수단 제조 부문의 글로벌 주도권 확보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내연기관 부문에서 영국보다 덩치가 큰 독일 및 프랑스를 앞설 것으로 예측한다. 과거 프랑스 및 독일보다 마차산업 덩치가 커서 내연기관 출발이 늦었다면 이제는 내연기관 부문의 덩치가 큰 프랑스와 독일이 영국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도 영국처럼 이동 수단 동력의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 또한 독일만큼 내연기관 산업의 규모가 크고 미국과 일본도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동력원을 주목하지만 내연기관은 아직 포기할 수 없는 부문이다. 미래 친환경 이동 수단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 여전히 내연기관 판매에서 조달될 수밖에 없어서다.
따라서 지금 거대 자동차기업의 권력 이동 중심에는 수송에너지가 자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국가별로 주력 수송 에너지를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변화에 적응하는 이동 수단 제조기업의 변신 속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 문제는 산업의 근간을 바꾸는 문제여서 속도가 더디고, 이동 수단 제조 원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세금과도 밀접하다. 결국 친환경 이동 수단 시장으로 가는 것은 맞지만 원가 부담이 월등히 낮은 IT처럼 내연기관은 빨리 갈 수 없다. 자동차와 기름은 이동 수단과 수송 에너지로 구분되지만 둘 모두 정부의 주요 세원(稅原)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국보다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중이니 친환경차로 빨리 가려면 세금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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