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hr모놀로그] ‘여곡성’ 손나은, 싸움은 이제부터 (인터뷰)

입력 2018-11-17 08:00   수정 2018-11-19 18:10


[김영재 기자] 11월8일 개봉작 ‘여곡성’ 옥분 役

신씨(서영희) 집으로 향하는 옥분 앞에 보이는 건 오직 잿빛뿐이다. 나무에 목이 매달린 시체, 검은 돌무더기 등이 그 을씨년스러움을 더 짙게 한다. “새로 온 몸종이냐?” 셋째 아들 이명규(김호창)가 옥분의 얼굴을 한 손에 쥔다. 그에게 옥분은 어머니 신씨가 돈 주고 사온 물건이자 “악귀를 불러들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더불어 동서들은 “사대부 아녀자”와 “천출”을 비교하며 옥분을 집에서 내쫓으려고 혈안이다.

하지만 하늘은 천애 고아에 갈 곳도 없는 “저 천한 것”에게 기회를 내린다. “기가 충만하고 혈류의 움직임이 왕성한”, 남편의 유산이 생긴 것. 사대부의 씨앗은 숨겨진 욕망을 일깨운다. 옥분에게 “운명은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중 태아는 곧 힘이다. 모성애는 갖은 수모와 고투를 겪어온 옥분을 만나 “야망”으로 변질해간다.

배우 손나은이 생각하는 영화 ‘여곡성(감독 유영선)’ 옥분은 핍박한 삶에 지쳐 생을 포기할뻔한 이다. 그래서 옥분의 야망은 신씨네를 마지막 안착지로 삼고 싶은 그의 당연한 생존 본능이다. 배우는 옥분에 관해 어쩔 수 없이 악을 선택한 비운의 캐릭터라고 동정을 보였다. 이어 어느 순간 옥분이 불쌍하게 느껴졌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얼마나 많은 외로운 싸움을 했을까?’ 생각했어요.”

신분 제도 아래 약육강식의 삶을 살아온 옥분과, 그를 통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배운 배우는 묘한 동질성을 띠고 있다. ‘여곡성’은 걸그룹 에이핑크 출신 손나은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다. 그리고 소위 ‘아이돌 배우’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호의보다 비판에 가까운 것이 사실. 신분에 묶인 옥분과 편견에 갇힌 손나은. 옥분의 싸움은 약 2시간여 러닝 타임으로 끝났지만, 배우 손나은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아이돌 출신이란 수식어는 평생 가져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어쩔 수 없다. 나는 가수 출신이다. 본업은 가수다. 그걸 굳이 떼려고 하지 않았고 떼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가수와 배우의 동반을 꿈꾸는 손나은을 11월6일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편견 타파를 위해 그가 택한 건 정공법이다. 주어진 길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와 약 1시간(1hr) 동안 나눈 대화를 모놀로그로 재구성했다.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어제는 정말 긴장 많이 했는데, 오늘은 여유를 찾았어요. 안정을 찾았어요. 조금은 즐기면서 하는 중이에요. 항상 멤버들이랑 같이 있다가 이렇게 혼자 인터뷰를 하니까 모든 질문에 다 제가 답해야 한다는 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내일은 인터뷰가 없어요. 내일도 하면 더 잘할 거 같은데. (웃음)

제가 공포 장르를 좋아해요.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극에 대한 로망도 있고요. ‘여곡성’ 장르가 사극 공포잖아요. 그래서 끌렸죠.

사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예전에 ‘대풍수’ 아역으로 잠깐 경험해봤어요. 그때는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를 때니까 그냥 했어요.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카메라 위치는 어딘지 하나도 모른 채 그냥 뛰어들었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때였어요. 왜냐하면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요. 지금은 아는 게 많아지니까 머리가 복잡해요. 생각이 많아졌어요.

‘여곡성’ 출연 이유에 장르만 있는 건 아니에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저도 모르게 옥분 캐릭터에 점점 감정 이입하고 있더라고요. 많이 공감했고요.

기자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어요. 정말 긴장한 채로 처음 봤죠. 제 개인적인 연기나 모습만 자꾸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볼 때는 조금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와. 너무 어려웠어요. 어제는 약간 배탈이 나기까지 했어요. 그 정도로 긴장한 건 진짜 오랜만이에요. 에이핑크 앨범 발매 전날과는 다른 긴장감이에요.

영화 출연을 막연히 꿈꿔왔어요. 어제 엔딩 크레디트 때 박수를 쳐주시는데, 그때 약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결과가 어떻든 반응이 어떻든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죠. 연기 자평요? 아쉽죠.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아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많고요. 제가 생각한 바가 막상 화면엔 안 나온 게 많아요. 경험이 쌓이면 능숙해지지 않을까요?

옥분은 갈 곳 없는 천민 출신의 고아예요. 그런 그가 소속감을 느끼게 되죠. 아이 덕에 인정을 받고요. ‘아이가 대를 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욕망으로 변질되는데, 아마 천출 출신의 옥분은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을 거예요. 삶의 포기를 생각했을 수도 있는 옥분이잖아요. 옥분에게 신씨 집은 끝까지 버텨야 하는 마지막 안착지였을 거예요.

물론 모성애는 제가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었어요. 많이 고민했죠. 엄마를 많이 떠올렸어요. ‘엄만 어땠을까?’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을 많이 생각했어요. 엄마에게 따로 물어본 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 혼자 해나가고 싶은 욕심이 큰 작품이었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어나간 건 이번 ‘여곡성’이 처음이에요. 서영희 선배님이나 (이)태리 오빠의 안정감이 참 감사한 촬영 현장이었어요. 딱 잡아주시더라고요. 긴장해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딱 잡아주시니까 제가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어요. 아직 그런 여유를 찾기엔 부족한 위치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경험이 더 필요한 셈이죠.

원작은 아직 안 봤어요. 다만 감독님께서 ‘돌로레스 클레이본’이란 스릴러 영화를 추천해주셨어요. 한국 영화는 ‘장화, 홍련’, 책은 ‘별들의 전쟁’을 권해주셨고요. 원래는 원작 ‘여곡성’을 보려고 했어요. 근데 원작이 저에게 끼칠 영향이 걱정되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원작 옥분과 이번 옥분은 많이 다르니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지렁이 국수 신 정도는 전에 봤는데, 영화 전체는 이제 보려고 해요.

아이돌 배우를 향한 편견은 항상 들어왔어요. 너무 잘 알죠. 때문에 촬영 때 마음이 위축되곤 해요. 다른 아이돌 배우 분들도 대개 그럴 거예요. ‘저 사람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란 게 생겼어요. 그 생각에 100을 할 수 있는 걸 그만큼 못할 때가 많아요.

근데 저는 아이돌 출신이란 수식어는 평생 가져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어요. 저는 가수 출신이잖아요. 본업은 가수고요. 그걸 굳이 떼려고 하지 않았고 떼고 싶지도 않아요. 주어진 길을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진심이 보시는 분들께 그대로 전달될 거고요. 사실 고정 관념을 갖고, 편견을 갖고 보면 뭐든 좋게 보일 수 없는 거 같아요. 연기할 때만큼은 제 진심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굉장히 오래하고 싶어요. 가수란 직업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생각해요. 이대로만 꾸준히 가면 너무 좋을 듯해요. 연기는 시작 단계예요. 물론 지금껏 해왔지만, 신인 때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사실 어떤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못 해봤어요. 모두에게 사랑 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또 인간 손나은으로서도 사랑 받고 싶고요.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일을 시작할 때 걱정이 진짜 많아요. 근데 하면 또 해요. “괜히 걱정했어. 이럴 줄 알았어” 하죠. 그 전(前)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요즘은 일을 즐기면서 하는 중이에요. 예전까진 수동적이었다면, 요즘은 능동적이죠. 옥분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웃음) 어쨌든 일은 해야 하는 거잖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여곡성’을 시작으로 많은 기회가 저에게 왔으면 해요. 에이핑크로 뵐 수 있을지, 아니면 배우 손나은으로 뵐 수 있을지 다음 계획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소원이 있다면 그냥 저 손나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합니다.(사진제공: 스마일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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