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뷰]"이동의 자유, 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

입력 2018-11-19 11:20  


 -계단 등 장애물 극복하는 '업 휠' 아이디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하는 탈 것 만들 것"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계단을 지나가야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탈 것에서 내린 후 손으로 끌고 내려가는 선택을 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소 불편하지만 감내할 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사람은 계단을 피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개인 이동수단(퍼스널 모빌리티)이 아무리 발전해도 잘 닦여진 길이 아니라면 이런 불편함을 감내해야만 할까? 자동차 연구원의 아이디어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현대기아차 소속 네 명의 연구원은 개인 이동수단의 가능성과 한계에 주목했다. 현재 서울 시내의 자동차 평균 주행속도는 평균 시속 25㎞에 불과할 만큼 정체가 극심하다. 원하는 곳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소형 모빌리티가 각광 받는 이유다. 정부에서도 온실가스 저감과 교통체증 완화란 장점 때문에 최근 개인 이동수단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작은 이동수단이라 해도 계단을 만나면 곤란해지기 마련이다. 육상 이동 수단은 바퀴로 움직이는 게 기본적이다. 둥근 바퀴로 편하고 안전하게 울퉁불퉁한 계단을 오르내리기는 어렵다. 특히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교통 약자들의 불편은 공론화가 필요한 문제임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다.

 2014년 현대차 상용디젤엔진기능시험팀에 입사한 최진 연구원은 대학 졸업논문을 준비하며 계단을 올라가는 휠체어를 연구했다. 고무로 된 바퀴로 탈 것을 만들면 계단을 유연하게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착안, 2013년 블록으로 시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한 대학생의 아이디어는 5년이 지나 세상에 드러났다. 현대기아차가 매년 개최하는 연구원 대상 아이디어 경진대회 'R&D 아이디어 페스티벌'에 본인의 아이디어로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 평균 나이 만 29세의 젊은 연구원들은 하나의 생각이 실제 탈 것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수 개월 동안 밤을 지새웠다. 그 결과 올해 대회에서 이들의 아이디어 '업 휠'을 장착한 개인 이동수단 '나무'가 대상을 수상하며 인정을 받게 됐다.

 지난 15일 현대기아차 남양 연구소에서 만난 이들은 사내외 관계자들의 질문 세례로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여러 차례 '나무'를 타고 계단 위를 오르내리며 기술 설명을 했고, 적용된 기술과 제작 과정 등을 묻는 문의가 활발했다. 

 둥근 바퀴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최진 연구원은 유연한 바퀴 구조로 계단을 매끈한 경사로처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유연한 고무로 다층 구조의 레이어를 만들었다"며 "바깥쪽 레이어가 계단과 만나 변형되며 안쪽 바퀴가 굴러갈 수 있는 경사로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고무바퀴를 만드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우선 원하는 물성이 나오는 고무바퀴를 만드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탄성이 있는 고무가 아니면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비정형으로 변화하는 고무의 물성 때문에 설계 및 제작이 어려웠다. 가공업체에 일을 맡기려 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직접 그린 설계 도면을 들고 가공공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바퀴를 만들어야 했다.

 한 명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결과물이 만들어진 건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부터 사소한 고민까지 팀원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다듬는 과정이 반복됐다. 당장 쓸모 없어 보이는 생각도 절대 가볍게 넘기지 말고 검토해본 덕분에 의외의 곳에서 해결을 찾기도 했다.

 조선명 연구원은 "고무바퀴가 방향을 전환하거나 장애물을 만났을 때 원하지 않는 형태로 뒤틀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려웠다"며 "'바퀴에 구멍을 뚫어 지지대로 보강해보자'란 의견이 나왔을 때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업 휠'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 연구원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흘려듣지 않고 끝까지 검토해보자는 게 내부적으로 정한 규칙"이라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장애를 극복하면서 팀워크도 좋아지고 실제 연구 업무에도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새벽에 몰래 시제품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대회를 준비했다는 이들이 생각한 건 한 가지다. 탈 것이 한계를 넘어설수록 많은 이들이 자유로워진다는 점이다. 특히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합리적인 가격대의 편리한 이동수단은 편의성을 넘어 삶의 질을 바꿔 줄 혁신을 줄 수 있단 점이 중요했다. 인터뷰 말미 최진 연구원이 남긴 메시지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퍼스널 모빌리티가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식은 느리고, 무겁고, 답답하고, 비싼 것들이었습니다. 누구나 편리하게 누릴 수 있는 기술의 혜택이라고 보긴 어렵죠. 어떤 장애물을 만나도 탈 것에서 내리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 우리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란 점은 자명합니다. 특히 몸이 불편하신 분들도 어디든 다닐 수 있게 아이디어를 보다 세련되게 다듬고 현실화하는 게 우리 팀의 목표입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니까요"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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