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럭셔리 브랜드엔 스토리가 있다"

입력 2018-12-06 14:18  


 -이안 칼럼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 방한
 -고급 자동차 브랜드 성공 조건으로 역사와 융합 강조

 "모두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가 되고 싶어 하고, 앞서갈 수 있는 솔루션 중 하나가 프리미엄 전략이다. 볼륨을 줄이되 마진은 높일 수 있어서다. 그래서 성공한 럭셔리 브랜드는 저마다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재규어도 예외는 아니다."

 이안 칼럼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가 한국을 찾았다. 대학생 대상의 자동차 디자인 공모전 '재규어 카 디자인 어워드 2018' 최종 결선작을 심사하기 위해서다. 재규어 플래그십 XJ 출시 50주년을 맞아 '50년 뒤 XJ'를 주제로 국내외 43개 대학에서 129개의 작품이 출품됐다. 1세대 XJ의 브로셔를 지금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XJ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이안 칼럼 디자이너에게 미래의 XJ는 어떻게 다가올까. 

 디자인 어워드 최종 심사 전날인 지난 5일, 이안 칼럼 총괄이 기자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엔 한국인 디자이너 박지영 씨도 함께 했다. 박 씨는 재규어 어드밴스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리드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로 활약 중인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다. 재규어 디자인 방향성과 럭셔리 브랜드의 성공 요건, 향후 자동차 디자인 전망과 미래 디자이너를 위한 조언까지 다양한 주제로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한국을 위시한 신흥 자동차 제조국은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하려는 열망이 강하다. 그러나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도 뚫기 어려운 게 럭셔리 분야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 고급 차 입지는 '철옹성'과 같다. 럭셔리 브랜드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안 칼럼은 '이야기(스토리)'를 꼽았다. 재규어 역시 83년의 오랜 역사를 기반으로 다양한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최대한 많이 알리는데 노력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재규어는 '아름답고 빠른 차'란 자부심이 강한 브랜드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운전 재미를 충족하는 성능을 동시에 갖췄다는 이야기다. 이안 칼럼에게 재규어 디자인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외형에선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과한 치장으로 화려하게 꾸미는 게 아니라 완벽한 비례감으로 자동차란 이동 수단의 본질을 간결하게 드러내야 한다. 실내는 균형감이 중요하다. 고급스러우면서 편안함을 보장해야 한다. 동시에 강력한 주행 성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역동성과 편안함을 동시에 표현하기란 쉽지 않지만 두 가치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게 재규어만의 매력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자동차 디자인 거장에겐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최근 자동차 디자인이 점점 비슷해지고, 자율주행차나 전기차가 상용화되면 디자인으로 차별화할 요소가 점차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그는 앞으로 럭셔리와 퍼블릭 브랜드 간 차이가 보다 극명하게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안 칼럼은 "전기차, 디지털, 자율 주행 등은 각기 다르면서도 서로 얽혀있는 중요한 변화"라며 "자율주행차의 경우 탑승객이 운전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공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동 수단이 될 것인데, 이 때는 유연한 공간을 제공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규어에서 스티어링이 사라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재규어는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차여서 드라이버를 고려한 디자인을 줄곧 유지할 것이고, 다른 럭셔리 브랜드도 고유의 디자인 요소를 지켜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미래 자동차의 변화가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도 그는 분명히 했다. 대표적인 예가 재규어의 순수 전기차 I-페이스다. 내연기관차에서 기술과 법률적 제약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던 디자인을 전기차를 통해 구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자동차 시장은 이미 글로벌화 됐지만 럭셔리 브랜드는 여전히 국가성이 짙다. 영국식 럭셔리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안 칼럼은 흥미로운 답변을 내놨다.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낯설게 하기'도 필요하다는 것. 그는 "때때로 영국인이 영국스러움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국, 이탈리아, 미국 등 해외에서 온 디자이너들이 오히려 영국스러움이 뭔지 잘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지영 디자이너 역시 "영국 문화를 한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었던 여건이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며 "그들이 놓칠 수 있는 점을 보다 객관적이고 섬세하게 관찰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첨언했다.

 간담회 말미에 두 디자이너에게 미래 자동차 디자이너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스스로를 제약에 가두지 말고 최대한 많은 것을 접하고 융합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이들은 귀띔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은 창의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누구나 손쉽게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지가 중요해지는 만큼 이들을 창의적으로 융합해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지가 디자이너로서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영 씨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하는지 너무 일찍 정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다양한 경험과 디자인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시도하면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자신의 철학과 (산업 디자인에선) 브랜드를 깊이 이해하고 소통하려면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경험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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