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윤호준] “그냥 연기가 좋아요”
서두로 ‘낯선 배우’를 꺼내자 “신선하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석보배(28)는 그가 생각한 바를 알리는 데 거침없는 배우다. 필시 예술가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내세우는 데 멈춤이 없어야 한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배우”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그는, “대중 분들과 지금보다 더 많은 접점을 갖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목구비에 여러 배우가 녹아 있다. 하지만 석보배는 그 자신을 평범하다고 소개했다. “어떻게 보면 예쁘고 어떻게 보면 못났어요. 덕분에 엄마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아오고 있죠. 순수함부터 묘한 분위기까지 두루 갖춘 셈이에요!(웃음)”
자만을 과시하는 것과, 가진 것에 당당한 건 서로 구분이 필요하다. 지난 2016년 SBS ‘너를 사랑한 시간’으로 데뷔를 알린 그는, 그간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OCN ‘터널’, KBS2 ‘고백부부’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려왔다. 독립 영화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아이러브(iLuv)’ ‘아!! 엄마 쫌!!’ ‘슈퍼걸’ 등이 필모그래피를 빼곡히 채운다.
특히 노인들의 사랑과 정을 담은 독립 장편 영화 ‘꽃손’에서는 수진 역을 맡았다. 작품은 제23회 춘사영화제, 제11회 노인영화제에서 각각 특별상과 개막작에 그 이름을 올렸다. “수진이는 사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이 닫힌 사람이에요. 불쌍한 여자죠. 보통은 이성으로 그 아픔을 해결하잖아요? 하지만 수진은 남해 노인 분들과 도움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상처를 치유해요. 이번 작품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어요.”
그가 고등학생 때 일이었다. 관객 하나 없는 소극장에 간 어린 석보배는, 이젠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한 연극을 접했다. “배우 분께서 연기를 굉장히 열정적으로 해주셨어요. 과장하자면 땀과 침이 무대를 덮었죠.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연극 한 편이 배우가 된 계기는 아니었다. 다만 ‘그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란 궁금증이 가슴에서 피었다.
이후 공주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현대 무용을 전공한 석보배는, 무용가의 길 대신 과거의 물음에 이끌렸다. 신인 배우 석보배의 서막이었다. “오나오냐 살아오진 않았어요. 대학교 등록금을 제가 벌어서 냈거든요. 지금은 요가 강사로 일하며 배우를 병행 중이에요.”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하염없는 대기 그리고 짧은 휴식. 그가 데뷔작에서 만난 연기의 이면이었다. 그럼에도 석보배에게 촬영 현장에 가는 건 꿈의 실현과 다름없었다. “막상 가보니까 현장이 제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근데 너무 재밌었어요. 저한테 딱 맞더라고요.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기 때문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석보배의 꿈은 아직 진행형이다. 배우 박희순 등이 출연하는 영화 ‘썬키스트 패밀리’에서는 미술관 큐레이터 역을 맡았다. 설경구, 조진웅, 허준호, 진선규의 만남이 기대를 모으는 ‘퍼펙트맨’에서는 아나운서로 등장한다. “‘퍼펙트맨’ 오디션을 위해 부산 사투리를 열심히 연습했어요. 다행히 오디션에서 그 노력을 인정받았죠. 근데 제게 맞는 역할이 없더라고요. 감독님께서 꼭 역할을 주고 싶다며 남자 역을 여자 역으로 바꿔주셨어요.”
석보배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늘 연기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공연한 라미 말렉부터, 김혜수, 전도연, 김유정까지. 그래서 연기 잘하는 배우는 언제나 석보배의 좋은 자극제다. “너무 많은 분들께 연기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고 있어요. 김유정 선배님이 떠올라요. 어린 나이에도 불구, 그 내공을 바탕으로 자신의 매력을 잘 보여주시더라고요. 조진웅 선배님, 허준호 선배님, 진선규 선배님도 대단하세요. 제 신은 아니었지만 가서 선배님들 연기하시는 거 보면서 너무 많은 걸 배웠어요.”
비중이 큰 역할을 맡는 건 아직 요원한 상황. 카메라가 그에게 초점을 두지 않더라도 석보배의 연기는 쉬지 않는다. “물론 저를 안 찍고 있겠죠. 하지만 표정이나 시선 표현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 컷이 만들어지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하는 이유를 물으니 “재밌으니까 열심히 한다”며 웃었다. “누구한테 잘 보이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시선 처리도 연기의 일부잖아요. 그 연기를 하는 게 전 그냥 행복해요. 더 많은 분들께서 좋게 봐주신다면 좋겠지만, 이렇게 천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요.”
미지수 매력을 가진 석보배. 하지만 연기 열정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게 뜨겁다. 목표로 칸영화제 참석을 꼽은 이 당찬 신인은, 과연 지중해 바닷바람 부는 프랑스에 도착할 수 있을까. 연기와 사랑에 빠지기. 배우의 첫째 덕목을 갖춘 그가 이제 막 첫 문턱을 넘어섰다.
“왜 연기에 재미를 느끼는지 그 답을 알기 위해 애써왔어요. 근데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너무 좋아요. 엄마 아빠가 왜 좋냐고 물으면 그분들께서 해주신 일을 다 열거할 수 없듯, 저도 그냥 끌렸어요. 그냥 연기가 좋아요. 묵묵히 제 길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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