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억원, 제조업 구조 혁신 비용으로 배팅
-노사문제, 정부 해결 과제로 공 넘긴 것
자치단체가 주도한 자본금 7,000억원의 자동차 제조기업이 광주에 만들어진다. 공장에서 생산할 제품이 있어야 하니 현대차를 끌어들이되 참여 약속을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53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현대차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생산된 제품을 사갈 때 최저가를 보장하라고 했다. 광주시는 이를 위해 근로자의 주거, 복지, 교육, 의료 등에 세금을 투입키로 했다. 대신 안정된 생산 물량을 요구했고 현대차는 누적생산 35만대가 될 때까지 제품 가격이 오르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 마디로 3년 6개월 동안 임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메시지다. 그리고 해당 요구는 '노사상생협의회 결정사항 유효 기간'이라는 단어로 정리됐다.
외형적으로 성공한 작품처럼 보이는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국내 고임금 생산 구조를 바꿔보자는 구조개혁의 시작이다. 그래야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현실 세계는 냉정한 정글과 같다. 지금은 서로 '윈-윈'처럼 보이지만 자치단체, 정부, 현대차 모두 살얼음판을 걷는 중이다. 특히 민간 자본인 현대차는 내심 530억원의 손실 처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왜 광주에 거액을 투자했을까? 이유는 4가지로 모아진다. 만들어 낼 경형 SUV는 수익성이 낮은 제품이어서 저비용 생산이 필수다. 그 중 핵심 항목인 인건비 부담이 울산공장에 비해 현저히 낮아 투자금의 조기 회수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경영 승계에 따른 정부와의 타협이다. 정의선 부회장으로 아직 승계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사전에 국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기존 현대차 생산노조에 대한 압박이다. 생산직 고령화로 매년 정년 퇴직자가 늘어날 때 새로 뽑는 것보다 비용이 낮은 광주 공장에 생산을 맡기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최악의 경우 투자금 530억원 정도는 손실로 처리돼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고비용 생산을 저비용으로 바꾸는 작업인 만큼 성공하면 단순히 경형 SUV의 수익이 아니라 회사 전체 이익이 증가할 수 있지만 실패해도 광주가 약속한 35만대를 팔아 일부 보전하면 된다. 그러니 현대차로선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기업은 앞날이 불투명한 투자는 결코 하지 않는다.
투자 확약을 하자 예상대로 현대기아차 노조가 반발했다. 향후 노조 구성원의 숫자가 줄어 힘이 약화될 수 있어서다. 그 전에 노조의 영향력을 보여주며 광주 공장 건립을 막기로 했다. 더욱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회사는 오히려 묵묵부답이다. 당장 근로자 지위가 흔들리거나 임금에 전혀 변동이 없어서다. 모든 임금과 복지, 그리고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광주 공장에 생산을 위탁할 뿐이다.
그러자 여론의 화살은 오히려 노조를 향한다. 대통령까지 협약에 참석, 힘을 실었지만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로지 힘의 약화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 여당은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표면적으로는 노코멘트다. 노조 파업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팽팽히 맞서는 데다 양쪽 모두 정치권은 표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는 쉽게 그려볼 수 있다. 현대기아차 노조가 명분이 약한 파업을 벌이면 회사는 불법 파업에 따른 대응 방침을 세운다. 이 때 정부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관건이다. 원칙적으로 공권력이 파업 진화에 투입되면 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고, 현대차 노사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놔두면 노조 입장을 지지하는 의미여서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에서 발을 뺄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장은 노조 파업에 따른 손해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우매한 일이다.
이런 결과는 제조 비용을 낮춰 일자리를 늘리려 했던 청와대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 반면 현대차도 530억원을 투자해 국내 자동차 제조업의 고비용 임금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가 물거품이 된다. 결국 새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정치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예상된다.
그렇다고 현대기아차 노조가 강경한 입장을 선회할 리도 없다. 광주형 일자리 계획을 놔두는 것은 훗날 울산공장, 또는 아산공장의 생산물량을 저비용 공장인 광주에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그래서 현대차의 530억원 투자는 절묘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자리 확대를 위한 투자 생색은 내면서도 노조 문제는 정부가 직접 해결하라는 암묵적 요구다. '표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젊은 층의 일자리 열매를 만들어 줄 것인가' 선택은 전적으로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여당의 몫이다. 그리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부가 현대차와 노조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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