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4월3일 ‘생일’이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5/5)
<2014년 4월16일 여객선 세월호가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전복 후 침몰>. 탑승 인원 476명 중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침몰 사고(이하 세월호 사고)’를 요약하는 한 줄이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탑승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의 피해가 제일 컸다. 학생 325명 중 250명이 바다의 별이 되었다.
4월3일 개봉한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은 부지불식간 별이 된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주변인의 이야기다. 참사 후 약 5년. 너무 이른 시기에 세월호 추모 영화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이종언 감독은 말한다. 쉬쉬하기보다 오히려 주목하고 더 많이 보는 일이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문 앞에서 벨을 누르는 정일(설경구)을 아내 순남(전도연)이 숨죽인 채 바라본다. 베트남에 간 남편이 돌아왔다. 훌쩍 커버린 만큼 정일을 기억조차 못하는 둘째 예솔(김보민). 이에 아빠는 아쉬움보다 부채 의식을 느끼고, 마트 일 때문에 바쁜 순남을 대신해 딸의 시화호 체험 학습에 동행한다. 하지만 아이가 어딘가 이상하다. 갯벌에 들어가기 싫다며 우네부네 발버둥 치는 예솔의 칭얼거림이 있고 나서야 정일은 그 잘못을 깨닫는다.
예솔이 바다에 안 들어가려 한 이유는 오빠 수호(윤찬영)에게 있다. 순남에게 수호는 아픈 손가락이다. 그날 이후 “밥도 못 먹는” 아들이 눈에 밟히는 엄마는 둘째의 반찬 투정이 밉고, 또 모녀가 아파할 때 울타리가 돼주지 못한 정일이 참 싫다. 이 가운데 세월호 유가족 쉼터를 제공 중인 영준(박종환)은 수호 생일 모임을 정일에게 제안하는데….
‘생일’의 시작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피로를 운운하는 일부 금수의 행태가 방아쇠로 작용했다. 극 중 쉼터의 모티프가 된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많은 것을 듣고 경험한 이종언 감독. 3월18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감독은 그가 자원봉사에서 경험한 유가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대중의 오해를 해소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감독이 해석을 지양한 작품답게 ‘생일’은 영상의 정적(靜寂)으로 그 문을 연다. 가족을 만나러 가는 아빠, 철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부(父)와 모(母), 세탁기 작동을 멍하니 보는 엄마 등이 담긴 화면에는 고요함이 약동한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관조로 일관하는 시선은, 아이를 시답지 않은 이유로 혼낸 엄마가 식탁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모습에서 더 극명하다. 카메라는 분노와 반성을 감내하는 순남을 ‘그저’ 바라만 본다.
특히 순남의 행동은 피붙이를 잃은 데 기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그 설명이 가능하다.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를 접하면 매우 고통스럽다. 외상과 연관된 생각, 느낌, 대화를 피하려고 한다. 지속적으로 공포나, 분노,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 행복감, 만족감, 사랑하는 느낌 등의 긍정적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화를 잘 낸다. 모두 국가건강정보포털에 기재된 PTSD 증상들이다.
남편의 생일 모임 언급에 순남은 “가 그만”을 나직이 말한다. 반찬 투정에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는 그가 지금 사리분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월호 유가족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순남의 태도 역시, 외상이 다시 생각나게 하는 사람을 피하려고 하는 PTSD 증상 중 하나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순남의 심리적 반응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오열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시나리오 지문은 ‘아파트가 떠내려가라 울고 있는 순남’. 이에 배우 전도연은 전신을 사용해 목놓아 운다. 전도연은 곧 순남이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신애는 밀양(密陽)에서 아들 준을 유괴당한다. 이창동 감독은 준이 유괴 후 살해된 것에 관해 “한 어머니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아픔의 유형이 유괴로 인해 자식을 잃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약 12년 만이다. 전도연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를 또 한번 연기했다. 예솔과 하루를 보내는 순남의 일부는 아들 준에게 짜증내거나 살갑게 구는 엄마 신애다. 기도회에 참석해 울부짖는 신애와, 아들에게 나도 데려가라고 하는 순남은 서로 판박이다. 식사 중 갑자기 주기도문을 외우는 신애 역시 PTSD를 앓는 환자다. 살덩이가 뭉텅 떨어진 것 같은 아픔은, 두 엄마가 시나브로 시나브로 수렁에 잠기게끔 그 등을 떠민다.
물론 ‘생일’은 ‘밀양’의 속편이 아니다. ‘생일’에는 특정 종교가 없고, 주인공은 욕심과 용서 사이에서 방황하기보다 그 번뇌를 일상적으로 감내한다. 순남은 아들을 바다에서 잃은 세월호 유가족이다. 때문에 감독은 순남을 통해 ‘세월호 사고’ 그 후를 조명한다. 그 조명은 더러 질문을 부르기도 하고, 상식을 이해시키는 다른 식의 해석이기도 하다.
순남은 생일 모임이 왜 싫냐고 하는 정일에게 “그냥 싫어. 이유 없이 싫어. 이유 없이 싫은 것도 있잖아” 한다. 맞다. 인간은 이유 없이 싫은 대상을 그 변덕으로 빚어내곤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이유 없이 싫은 것은 바로 ‘세월호 사고’와 그로 인해 파생된 모든 것이었다. 싫은 데 그 이유가 없을 수 있는 것이 곧 인생이나, 만약 그 이유가 없다는 것이 특정할 수 없는 편견에 의한 것이라면? 재고(再考)는 당연한 일이다.
쩍. 또 쩍. 같이 두면 혹 결례를 끼칠 것 같던 현실과, ‘생일’ 속 비현실의 조합은 응당 함께해야 하는 것처럼 찰떡같이 결합해 그 편견을 해체한다.
순남이 마주한 한 유가족은 말한다. 기억 교실을 내줄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이 때로는 떼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보존 가치를 부르짖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 둘은 대립하지 않고 양립한다. 또한 4.16 세월호참사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 등으로부터 보상금을 받기로 한 어느 가족을 향해 “인연”을 언급한다. 단합 대신 슬픔을 공유한 시절에 더 가치를 두는 유가족을 보면 그들은 자녀 권익 찾기에 몰두하는 강성 조직이 아니라, 슬픔을 함께함으로써 그 눈물을 반으로 나누는 데에도 신경 쓰는 옆집의 엄마고 아빠다.
또 ‘세월호 사고’ 생존자 1년 치 등록금 지원과 정부의 억대 보상금 대책이 등장, 유가족이 가족 구성원을 잃은 것 외에 추가 피해에 시달렸음을 상기시킨다. 특히 슬픔을 웃음으로 달래는 다른 유가족의 추모와, 생일 모임을 주도하는 영준의 선의를 각각 비아냥과 단언으로 대응하는 순남의 모진 모습은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일을 멋대로 이젠 됐다고 하거나 그 위에 정치적 의도를 덧씌우는 일부 반대자를 떠올리게 하기도.
유가족과 그 정반대 무리가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세월호에 집중하기 전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먼저 집중해야 함을 보여주는 이종언 감독의 통찰이다.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한 정성욱 세월호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부서장은 5년째 싸우고 있지만 아직 세월호 침몰 사건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된 게 없다고 했다. 이어 ‘2기 특조위’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함께 지켜봐달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2015년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3조에 의거,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립됐으나 전(前) 정부와 집권 여당의 방해로 ‘세월호 사고’는 그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 현재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 수정안에 의해 구성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즉 2기 특조위가 지난해 12월부터 ‘세월호 사고’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를 본격 규명 중이다. 특조위는 배의 침몰 원인 등을 재검토 중이며, 정보 기관의 ‘세월호 사고’ 개입 여부와 전 정부의 1기 특조위 활동 방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한편, ‘생일’은 극 중후반 한 번, 후반 또 한 번 여백을 주시한다. 그곳에 사람의 형체는 없다. 다만 사람의 목소리는 있다. 중후반은 슬픔이고 후반은 기쁨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슬픔은 더는 없고 미래 지향이 그 추세일지라도, 유가족에게는 아픔이 잔존할 것을, 대한민국에게도 그 트라우마는 계속 실재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시간과 민주적 절차에 힘입어 상처는 아물고 있다. 하지만 광화문 세월호 천막이 자진 철거된 것과 법원이 피고(대한민국, 청해진해운)에게 ‘세월호 사고’에 대한 손해 배상금 지급을 선고한 것은, 유가족 가슴에 메인 슬픔과 별개 문제다. 소위 ‘완치 선고’ 따위가 아닌 것. 참사의 진실은 아직 오리무중이고, 딱지가 생긴 상처 역시 상처다.
생일 모임이 시사하는 바는 ‘슬픔은 나누면 반’이라는 상식이 여전히 그 효과가 있다는 것 아닐까. 사회의 몫이 공감과 상기라면, ‘생일’은 그들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감싸는 최신의, 최선의 치료제다. 4월3일 개봉. 전체 관람가.(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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