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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5월9일 ‘걸캅스’가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3/5)
누리꾼은 그 집단 지성을 유희 좇기에 사용하곤 한다. 영화 ‘걸캅스(감독 정다원)’는 또 한 편의 누리꾼 유희 영화다. 본작은 개봉 전부터 여러 조롱을 받아왔다. 제목에 영단어 ‘걸(Girl)’이 있다는 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 등이 각종 ‘젠더 분쟁’에 몸살 앓고 있는 대중에게 페미니스트 영화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미영(라미란)과 지혜(이성경)는 경찰이다. 그들은 그 어떤 ‘남성’ 경찰보다 월등하다. 하지만 세상은 ‘여성’이란 이유로 매번 둘의 승진을 누락시키고, 남편 지철(윤상현)은 워킹 맘 미영에게 늘 “밥 줘” 한마디뿐이다. 이 가운데 미영과 지혜의 눈에 사건 하나가 포착된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조사가 불허되고, 이에 두 사람은 그들만의 비공식 수사에 나선다. 수사 중단 압박은 물론, 아줌마는 집에 가서 밥이나 차리라는 조롱에, 경찰을 무서워하기는커녕 같이 데이트하자는 모욕적 언사까지. 범죄에 맞서 또 세상에 맞서 두 경찰은 걸크러시로 ‘남성’ 조직 폭력배를 무자비하게 쓰러뜨린다. 몇 달 후, ‘남성 카르텔’ 타파를 외치며 오직 여경으로만 구성된 팀 ‘걸캅스’가 출범한다. 그들이 누구냐고 묻는 한 ‘남성’ 보스에게 미영과 지혜는 있는 힘껏 외친다. “우리? 대한민국 여경이야!”》
누리꾼이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한번 문 먹잇감은 절대 놓지 않는 사냥꾼이란 것에 있다. 한국형 ‘그래비티’로 화제를 모은 영화 ‘귀환’은 지난해 11월 제작이 무기 연기됐다. 클리셰 범벅 한국 영화계를 질타하는 한 유머 글이 그 원인으로 지목됐다. ‘귀환 시나리오 유출’이란 제목의 글을 보고 대중은 이미 영화 다 봤다고 아우성쳤다. 물론 잘못은 제작사 몫이다. 한 관계자는 비주얼이 중요한 영화기에 시나리오 밀도가 낮아도 될 것이란 판단이 있었다며 영화의 기본 요소인 ‘시나리오’를 간과한 점을 간접 시인했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요즘 가장 핫한 희화화 대상이다. 거대 자본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일은 으레 있는 경우다. 인터뷰에서 배우들은 “흥행은 모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 ‘항일 영화’는 대중이 외면―손익분기점은 400만 명이나 누적 관객수는 17만 2212명에 그쳤다.―한 여느 영화로 잊혀질 뻔했다. 하지만 주인공 엄복동을 연기한 배우 정지훈의 엄복동만 기억해 달라는 취중 SNS 게시글이 소위 ‘밈(Meme)’의 반열에 오르며 무관심은 관심으로 치환됐다. 최근 ‘UBD(엄복동)’라는 단위는 세상이 기억하는 ‘자전차왕 엄복동’의 새 자아다. 1UBD는 ‘자전차왕 엄복동’의 총 관객수 약 17만 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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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언급된 ‘걸캅스’ 줄거리는 실제 줄거리가 아니다. 한 누리꾼이 개봉 전 인터넷에 올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읽기 좋게 고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귀환’의 경우에서 드러났듯 누리꾼의 식견은 개봉도 안 한 영화의 시작과 끝을 미리 보는 데까지 이르렀다. 또한, 누리꾼은 줄거리뿐만 아니라 주요 장면까지 예측했다.
①사건 종료 후 뒤늦게 등장하는 남성 경찰. “이걸 둘이서 다 처리하셨다고요?”, ②여성보다 못하다고 후배를 갈구는 팀장. “어떻게 남자 새끼가 여자보다 느리냐!”, ③여성이라고 무시하는 불량 고교생을 가르치는 주인공. “아줌마는 신경 끄세요”-“어린 놈의 새끼가! 어른한테 버릇없이”, ④형사 아내가 위기에 처하자 힘을 보태는 전업주부 남편. “여보 나 잘했지?”-“으휴 저 화상!”. 게다가 감독과의 가상 인터뷰 기사가 돌아다닐 정도로 ‘걸캅스’에 대한 누리꾼의 조리돌림은 갈수록 그 위세가 대단하다. 또 ‘남성이 여성보다 못하다’로 수렴되는 여러 추측은 영화에 페미니즘을 덧대며 작품의 본 의도를 해치는 중이다.
다음은 ‘걸캅스’의 실제 앞부분 줄거리.
《가죽 재킷에 배바지 입고 가위차기로 범죄자를 조지는 여자형사기동대 11기 미영은 당당한 “법의 집행자”다. 그의 존재는 어린 지혜가 경찰이 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모두 왕년이다. 미영의 현재 직업은 고소고발진정 민원실 주무관. 사법고시에 목매는 남편 탓에 가족 생계는 전부 미영의 몫이다. 이 가운데 미영은 눈앞에서 교통사고 당한 민원인이 디지털 성범죄 신고를 위해 민원실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모든 경찰 부서가 나 몰라라 하는 성범죄 사건의 수사를 위해 지혜와 팔을 걷어붙인다. 발로 뛰는 지혜와 노련미 넘치는 미영은 몰카범 상두(안창환)의 도움으로 이 모든 사건의 근원에 마약과 마취제가 결합된 일명 ‘매직 퍼퓸’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지난달 30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정다원 감독은 “통쾌하다”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다. ‘현실 범죄를 영화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통쾌함을 안기는 오락 영화’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감독의 소개처럼 ‘걸캅스’는 유쾌하고 통쾌하고 시원한 영화다. 또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다. 페미니즘 따위는 발붙일 곳 없는, 이념 없는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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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걸캅스’에는 당연히 여성이 있다. 어린 지혜는 “여자도 형사가 있구나”란 혼잣말로 여경의 존재를 자각하고, 엄마 미영은 “여자가 형사하기 참 힘들지?”란 민원실장(염혜란)의 말대로 아들 앙육 문제 때문에 형사를 포기한다. 스타킹에 잉크 뿌리고 도망가는 범인은 강력반 실적에 도움 안 되는 잡범일 뿐이다. 또 오 형사(전석호)는 지혜를 이해할 수 없다. 성관계 동영상 유포범을 잡으면 뭐 하나. 벌금 500만 원 내면 “나가리”인데. 여자라서 더 흥분하는 거 아니냐고 하고 싶지만 사회적 위신이 그를 입 다물게 만든다.
특히 미영은 그가 지금 디지털 성범죄자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가해자 대신 그 자신을 탓하는 광경이 화를 부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 ‘여자라서 당했다’ 식의 저열한 캐치프레이즈는 없다. 미영의 말처럼 그들은 “우연히” 나쁜 놈들에게 당했을 뿐이다. 만일 ‘매직 퍼퓸’의 사용자가 여성이라면 피해자는 남성이 될 터. 성(性)의 반전이 쉽다는 것은 성을 구별하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과 진배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남녀 성 대결을 지양하기 위한 작은 노력까지 곁들인다. 지혜는 여성청소년과 형사를 만나 수사 요청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고작 “여청과가 봉이야?”가 전부다. 세상에 남녀 구분이 얼마나 미련스러운가를 보여주는 신이다. 민원실 주무관 장미 역을 맡은 배우 최수영은 미영이 대단한 것은 그가 여자 형사라서가 아니라며, “누구나 미영이 되어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관점으로 영화를 보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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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잊는 순간, 웃음이 관객을 반긴다. 다만 장르, 소재, 배급사가 같다는 점에서 올해 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극한직업’이 떠오르나 그에 비하면 ‘걸캅스’는 웃음에 있어 하수다. 전형성을 살짝 비트는 선에 그쳐 새로움이 덜한 것이다.
시의성 있는 대사 등은 현실을 매개로 ‘웃픈’ 웃음을 전한다. 또한, 유명 배우 셋의 카메오 등장은 코미디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그 웃음이 배가됨을 깨닫게 한다. ‘걸캅스’가 영화 첫 주연작인 두 배우가 채 채우지 못한 여백을 모텔 직원과 클럽 앞 덩치1 그리고 강력3팀 팀장이 제대로 채운다. 배우 윤상현은 이 영화의 숨은 공로자다. 남성을 무능력한 이로 묘사했다는 일부의 날이 선 지적과 별개로, 그 덕분에 ‘걸캅스’의 웃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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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게 많은 영화다. 극 중 디지털 성범죄는 ‘클럽 버닝썬 사건’ 등을 떠올리게 한다. 또 경찰 조직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실적”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및 사회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공무원”이 아닌 듯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요약하는 한 줄은 ‘타인의 좌절과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두 공무원이 악을 일망타진한다’는 것이다. 오락 영화에 이념 등을 투영하는 일은 몸에 해로운 행위다. 두 콤비의 활극에 관객이 얻어갈 것은 불의가 심판받는 통쾌함과, 나 또한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전부다. 다른 건 사족 아닐까.
배우 이성경에 따르면 가제 후보 중 하나가 ‘미영과 지혜’였단다. 라미란은 재밌고 이성경은 예쁘다. 과연 웃기고 화사한 ‘미란과 성경’은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이념 및 젠더 갈등을 보기 좋게 타파할 수 있을까. 클리셰와 남성 중심 서사는 한국 영화계의 병폐이나, 이를 지적하는 일은 영화 개봉 이후가 되어야 한다. 개봉 전부터 조리돌림 하는 일은 강자가 약자를 쥐어 패는 갑질이자 폭력일 뿐인 것이다. 타의적 노이즈 마케팅에 신음 중인 ‘걸캅스’. 약자의 선전을 두 손 모아 기원한다.(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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