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정책으로 ESS 화재…왜 기업만 탓하나"

입력 2019-06-19 17:36   수정 2019-08-28 11:10

“화재가 잇따르기 전까지 정부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 특화된 안전기준을 마련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설치 부실이었다’며 업계 탓을 하는데 답답할 따름입니다.”

19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9 세계 태양에너지 엑스포’에서 만난 ESS 부품업체 디아이케이의 이병열 이사는 “정부의 안전기준이 있었다면 업계가 왜 안 따랐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람회장 곳곳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ESS 화재는 정책의 실패”

이날 박람회에는 태양광·ESS 관련 업체 250여 개가 참가했다. 업계와 방문객의 최대 관심은 신기술이 아니라 ESS 화재와 그에 따른 규제 여파였다. 한 ESS 제조·시공업체 관계자는 “방문객 대부분이 규제 강화로 인해 ESS 공급·설치 비용은 얼마나 오르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2017년 8월 이후 전국에서 23건의 ESS 화재가 잇따르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지난 11일 △배터리 보호 시스템 결함 △수분·먼지 등 관리 미흡 △설치 때 결선 등 부주의 △부품 간 통합관리 부재 등 네 가지가 화재 원인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법정 검사주기를 단축하는 등 안전강화 대책도 포함됐다. 이전까지는 배터리 등 주요 부품에 대한 인증 기준이 없었다. 소방·방화시설로 지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업계는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펼친 게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탈(脫)원전’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늘리면서 2016년 74곳에 불과했던 ESS 사업장은 지난해 말 947곳으로 급증했다. 조성신 한국ESS산업진흥회 이사는 “ESS 화재든 태양광 사기든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펼 때부터 예상된 문제였다”며 “1년 넘게 원인조사를 끈 끝에 규제를 강화한다니 가뜩이나 일감이 없어진 중소기업들은 고사 위기”라고 말했다. 한 태양광 시공업체 관계자는 “ESS 화재는 정책의 실패”라며 “일부 비용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시공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태양광산업, 중국산 놀이터”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한 회의감도 쏟아졌다. 이상환 제이와이테크솔라 이사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고 우리도 태양광업계 종사자지만 수상태양광 패널로 저수지를 덮는 등 환경 파괴에 대한 정부의 경각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태양광업계가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산 태양광 모듈 가격은 국산의 60~70% 수준이다. 태양광전지 부품인 잉곳·웨이퍼를 생산하는 웅진에너지는 중국산 제품에 밀려 지난 4월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홍기웅 전국태양광발전협회장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에만 급급해 국내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데는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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