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업계가 판매 부진의 공포에 휩싸였다. 한국GM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등 중견 자동차 3사는 ‘판매절벽’ 수준에 직면했다. 해외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내수시장에서도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GM과 쌍용차, 르노삼성의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38만6602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감소했다. 반기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상반기 이후 최저치다.
판매 부진은 생산량 감축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쌍용차는 이달 나흘간 공장 문을 닫기로 했다. 2009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의 공장 가동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올 1~5월 판매량은 사드 보복이 한창이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도 20% 이상 줄었다.
차업계의 판매 부진 후폭풍은 부품업계로 전이되고 있다. 한라그룹 계열 자동차 부품사인 만도는 88명인 임원을 20% 이상 줄이고, 440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로 했다. 창사 이후 첫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다.
"자동차가 안 팔린다"…한국 車산업, 판매절벽에 '허리' 끊어질 판
쌍용자동차가 이달 나흘간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경기 침체 여파로 판매량이 줄자 일시적 감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극심한 노사갈등이 발생했던 2009년 이후 첫 가동 중단(셧다운)이다.
한국GM과 르노삼성자동차는 이미 셧다운을 경험했다. 한국GM은 지난해 전북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던 차량이 워낙 안 팔렸기 때문이다. 부평2공장은 지난해 말부터 1교대제로 운영되고 있다. 역시 판매 부진 탓이다. 르노삼성은 올해 노조 파업으로 공장 문을 여러 차례 닫았다.
내수·수출 함께 감소
한국 자동차산업의 ‘허리’인 한국GM, 쌍용차, 르노삼성이 동반 위기에 빠졌다. 노사갈등 같은 일시적 문제 탓이 아니다. 차가 팔리지 않고 있다. 맏형 격인 현대·기아자동차는 올 들어 판매가 회복되는 모습이지만, 나머지 3개사의 상황은 작년보다 더 나빠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2일 집계한 한국GM, 쌍용차, 르노삼성의 올 상반기 판매량은 38만6602대다. 지난해 상반기(43만9153대)와 비교하면 12.0%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상반기 이후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이다. 8년 전인 2011년 상반기(58만3760대)보다 20만 대 가까이 줄었다. 2015년 하반기(50만5667대) 이후 내리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40만 대 선도 무너졌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이들 3사는 연간 100만 대 넘게 차를 팔아야 정상적으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며 “지금 추세로는 연간 80만 대 생산도 불가능한데, 이렇게 되면 정기적 감산과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수출과 내수 모두 전년 동기보다 줄었다. 수출은 30만4231대에서 25만8548대로 15.0%, 내수는 13만4922대에서 12만8054대로 5.1% 감소했다.
‘신차 부재-판매 부진’ 악순환
한국GM과 쌍용차, 르노삼성의 판매가 부진한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으론 같다. 소비자를 사로잡을 만한 차가 없다는 점이다. 쌍용차는 야심차게 내놓은 신차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 2월 판매를 시작한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란도는 월 1000대가량만 팔린다. 당초 월 3000대씩 판매될 것이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지난달 부분변경한 소형 SUV 티볼리도 오히려 판매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쌍용차는 지난 5~6월 판매량 급감이 눈에 띈다. 5~6월의 판매량을 더하면 2만2281대로 2012년 이후 가장 나쁘다. 이 회사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위축 탓에 현대·기아차의 일부 인기 차종을 제외하면 제대로 팔리는 차가 없다”고 털어놨다.
업계에서는 쌍용차가 연구개발에 많은 돈을 쏟아붓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다른 브랜드 차량보다 상품성이 떨어져 판매가 부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쌍용차 라인업이 SUV에 집중돼 있는데, 경쟁사들이 잇따라 신형 SUV를 내놓고 있어 차별성이 없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르노삼성은 2016년 이후 완전변경(풀체인지)한 신차를 내놓지 않고 있다. 매년 신차를 내놓을 만큼 자금이 풍부하지도 않다. 본사(프랑스 르노)에서 물량을 받아오면 되지만, 세계 각국 공장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한동안 르노삼성은 수탁생산 수출물량(닛산 로그)으로 버텼지만, 위탁계약이 끝나는 올해 9월 이후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GM도 마찬가지다. 2017년 나온 준중형 세단 크루즈가 마지막 신차(완전변경 기준)다. 내년에 출시할 준중형 SUV 트레일블레이저를 빼면 당분간 신차는 없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은 각각 지난해와 올해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으면서 내수 판매망까지 망가졌다.
한국GM과 쌍용차, 르노삼성의 위기는 부품사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3개사와 거래하는 1차 협력사만 500개가 넘고 2~3차 협력사 수는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 3개 완성차 업체와 협력사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면 공장이 있는 경기 평택과 인천 부평, 경남 창원, 부산 등지에서 ‘실업대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도병욱/장창민 기자 dod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