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戰 내비친 문재인 대통령 "가용자원 총동원"

입력 2019-07-10 17:38   수정 2020-11-12 19:31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비상대응 체제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자산 10조원 이상 30대 대기업 총수와 4대 경제단체 초청 긴급간담회를 열고 “일본의 부당한 수출제한 조치의 철회와 대응책 마련에 비상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이 사태 장기화를 처음 언급한 것은 일본 정부의 수출제한 조치 이유가 매번 바뀌는 등 일관성 있는 협상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이유로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아무런 근거 없이 대북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 우호와 안보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일본 측에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기업과 정부에는 기민한 공조체제 구축과 함께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대응책 마련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비상상황인 만큼 민관 비상대응 체제를 갖춰야 한다”며 주요 그룹 최고경영자와 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 간 ‘핫라인’ 구축을 제안했다.

핵심 부품과 소재, 장비 국산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고 세제와 금융 등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했다. 대기업을 향해서는 “부품 소재 공동개발과 공동구입을 위한 수요기업 간 협력과 부품 소재를 국산화하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긴급간담회는 참석 기업인들의 발언이 이어지면서 당초 예정된 90분을 넘겨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일본 출장 중인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화학물질은 다른 공장 제품을 들여오더라도 승인을 받고 최적화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며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은 “화학물질관리법 등이 핵심 소재를 개발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규제완화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수입처 다변화와 해외 원천기술 도입을 위한 인허가 등 행정 절차가 필요하면 최대한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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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특정국가 의존형 산업구조 반드시 개선…기업이 중심 돼야"

문재인 대통령과 국내 30대 그룹 총수들은 10일 두 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부품 소재 수출 규제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당초 20대 그룹 이내로 줄여 내밀한 간담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일본이 추가 경제보복 카드까지 거론하는 등 확전이 불가피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 대상을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그룹과 4개 경제단체로 늘렸다.

청와대는 이날 간담회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정부와 민간기업이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일본 측에는 외교적 채널을 통한 해법을 촉구하는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기업인들과 일본 수출 규제와 관련해 단기적, 장기적 조치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일본의 조치가 양국 간 경제 협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민간 차원에서도 총력을 다해 설득해 나가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롯데 등 한국 기업들의 일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기업인들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우려

문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한국 정부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노력에 화답해줄 것을 촉구하면서 최근 일본 정부의 행보에 불편한 속내를 비쳤다. 문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문 대통령이 인사말에서 밝힌 것처럼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대한 기업인들의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공개석상에서 처음 밝힌 것도 일본의 최근 태도가 상식의 궤를 넘어서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출제한 조치 초반에는 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따른 신뢰 위기를 거론하더니 나중에는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 가능성, 더 나아가 사린가스 활용설 등 계속 말이 바뀌고 있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아무런 근거 없이 대북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 우호와 안보 협력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인 것 역시 최근 일본의 주장이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업인들은 부품산업 경쟁력 강화와 소재·부품 국산화에 대한 정부 의지에 공감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사태 장기화 우려와 함께 긴 호흡의 정부 대응을 당부했다.

가용자원 총동원해 “부품·소재 기술 확보”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 이어 이날도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핵심 부품·소재 국산화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주력 산업의 핵심기술 핵심부품 소재 장비의 국산화 비율을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세제, 금융,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사실상 일본을 직접 겨냥했다. 이를 위해 “정부만으로는 안 되고 기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원천기술이 핵심인 소재 부품 분야의 기술력 확보가 생각만큼 여의치 않고 시일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일부 참석자는 원천기술 강국인 독일 러시아 등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지난 6개월 동안 검토해온 부품 소재 분야 기술력 확보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정부도 추가경정예산과 행정절차 간소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기술 국산화는 3~5년에서 최대 10년의 기간이 걸릴 수도 있어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로 지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체 기술 확보는 기업들이 중심이 되고 정부는 기초 연구개발과 세제,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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