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2002년 공동 창업한 간편 송금 서비스 회사 페이팔을 이베이에 넘겼다. 지분 매각으로 그가 손에 쥔 돈은 1억8000만달러(약 2129억원). 그의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갑자기 큰돈을 벌어들인 젊은이가 다음으로 한 일은 무엇일까. 머스크는 어린 시절 하루에 10시간씩 독서하던 책벌레였다. 그중에서도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했다.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 우선 순위는 로켓이었다. 페이팔을 매각한 그해 머스크는 로켓 개발 회사 스페이스X를 창업했다.
아마존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이조스는 돈을 벌기 시작하자 땅부터 보러 다녔다. 1995년 사업을 시작한 아마존이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매출 성장세가 본궤도에 오른 2003년부터다. 헬리콥터를 타고 텍사스 오지를 물색했다. 그렇게 베이조스가 서부 텍사스에 사들인 부지는 1300㎢에 달했다. 로드아일랜드주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땅의 용도는 시애틀 외곽에 그가 세운 블루 오리진이라는 벤처기업의 정체와 함께 밝혀졌다. 블루 오리진은 우주항공 회사다. 텍사스에 매입한 땅은 우주를 향한 그의 꿈, 로켓을 발사할 장소였다. 그가 블루 오리진을 창업한 것은 머스크보다 앞선 2000년이었다.
《타이탄》은 ‘민간 우주 탐사 시대’를 열기 위해 야심차게 전진 중인 ‘거인들’의 행보를 좇는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저자는 수많은 인물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들을 엮어가며 우주 개발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고 모험과 경쟁으로 가득한 현장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성공한 기업가들이 본업과 무관해 보일 뿐만 아니라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우주 사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우주는 새로운 플랫폼이다. 머스크와 베이조스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그랬듯 저렴한 비용으로 그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면 인류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이후 우주 탐사는 큰 진전이 없었다. 우주는 여전히 정부의 독점 영역이었고 냉전구도라는 자극제도 사라졌다. 아이디어와 재산뿐 아니라 우주 개발에 대한 꿈과 의지를 가진 기업가들이 이 ‘정체(停滯)’를 흔들고 있다. 올 5월 스페이스X는 초고속 인터넷용 위성 60기를 한꺼번에 발사했다. 머스크는 2023년엔 민간인을 태우고 달로 떠나는 우주관광사업을 할 계획이다.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 오리진도 2024년 달에 착륙할 우주선 ‘블루문’을 지난 5월 공개했다.
책은 베이조스와 머스크뿐 아니라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의 회사 버진 갤럭틱과 그곳에서 제작한 우주선 ‘스페이스 투’, 거대한 제트기 ‘스트래토론치’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도 언급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정반대의 스타일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베이조스와 머스크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간다.
저자는 머스크를 ‘자신만만한 토끼’에, 베이조스를 ‘비밀스러운 거북이’에 비유한다. 그는 “항상 대담한 머스크는 물불 가리지 않으며 거침없이 달려 나가 무대 중앙을 장식한다”고 평했고, “베이조스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며 그가 설립한 우주 벤처기업은 장막 뒤에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로켓 착륙 방식과 로켓 추진력의 중요성을 두고 싸웠다. 로켓 발사 시설을 둘러싸고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자금 조달 전략도 다르다. 머스크는 초기 스페이스X에 자신의 재산 1억달러를 투자한 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계약을 맺어 4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제공받았다. 베이조스는 “1년에 10억달러 정도의 아마존 주식을 팔아 블루 오리진에 쏟아붓고 있다”고 농담할 정도로 자기 자산으로 블루 오리진의 운영 자금을 대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우주 프로그램을 부활시킨 선구자’라는 것은 둘의 분명한 공통 분모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알렉사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정치에 관해서라면 크게 생각하고 싶네요. 우리는 우주 탐사에 자금을 지원해야 해요. 저는 화성에서 날아오는 질문에 응답하고 싶어요.”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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