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삼륜차의 추억

입력 2019-08-20 17:41   수정 2019-08-21 00:21

동남아에는 바퀴 셋 달린 삼륜(三輪)택시가 흔하다. 태국의 ‘툭툭(Tuk-tuk)’, 필리핀의 ‘트라이시클(Tricycle)’, 인도네시아의 ‘바자이(Bajay)’, 인도의 ‘오토릭샤(Auto rickshaw)’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삼륜차로 제작됐거나 모터사이클을 개조해 지붕과 좌석을 얹은 것이다. 이집트 수단 등 아프리카에도 있다.

삼륜차 하면 더운 지역의 저개발국을 연상케 된다. 꽉 막힌 도로나 좁은 길을 헤집고 다니는 데 제격이지만 속도나 안전은 미흡하다. 앞바퀴가 하나여서 내리막길에서 회전할 때 특히 취약하다.

동남아에 유독 삼륜차가 많은 것은 일본이 1934년부터 태국에 삼륜차를 수출한 데 기인한다. 일본 우정성은 동남아 일대에 삼륜차 2만여 대를 기증했고, 다이하쓰가 1957년부터 동남아에서 삼륜차를 생산해 더 널리 퍼지게 됐다. ‘툭툭’은 모터소리를 딴 이름이지만 ‘릭샤’는 ‘역차(力車)’의 일본어 발음에서 왔다.

국내의 최초 삼륜차는 1962년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이 일본 마쓰다의 부품을 들여와 조립생산한 ‘K-360’이다. 차폭 1.2m, 적재량 300㎏의 초소형이었다. 이어 1967년 적재량 2t짜리 ‘T-2000’, 1969년 ‘K-360’을 개량한 ‘K-600’ 등은 소상공인들의 ‘발’이 됐다.

1970년대 들어 고속도로 시대가 열리면서 삼륜차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쌀이나 연탄을 싣고 언덕길을 헐떡거리며 올라가던 삼륜차가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문화재청은 2008년 ‘K-600’을 등록문화재로 선정하기도 했다.

최근 삼륜차가 전기차로 재탄생해 서울 거리에서 간간이 눈에 띈다. 앙증맞은 외관, 저렴한 가격, 운전 편리성 등이 장점이다. 자동차관리법에 삼륜차 규정이 없어 한동안 출시를 못 하다가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의 규제혁신 주문으로 판매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삼륜차가 ‘이륜차 기타형’으로 규정돼 이륜차(모터사이클)의 헬멧 착용의무에 또 발목이 잡혔다. 차문과 안전벨트가 있어도 운전자 동승자 모두 헬멧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속도가 시속 80㎞여서 자동차 전용도로 운행도 금지된다. ‘사기는 쉬워도 타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법규는 시장과 기술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안전은 필수지만, 건건이 규제에 막혀선 혁신이 싹틀 수 없다. 이런 식이면 중소기업의 ‘미래 먹거리’는 어디서 찾겠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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