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훈 농협은행장, 요즘엔 디지털에 푹~ 명함엔 행장 빼고 '디지털 탐험가'

입력 2019-08-20 18:02   수정 2019-08-22 11:39

“아무리 바빠도 딱 3분만 더 얘기 나눕시다. 요즘 고민거리 뭐 없나요?”

이대훈 농협은행장의 집무실은 ‘블랙홀’로 통한다.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보고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면 이 행장의 눈빛이 바뀐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3분만 빌려달라”고 말한다. 때로는 30분까지 길어질 때도 있다. 업무 보고를 하러 이 행장 집무실을 찾았다가 일상생활 고민을 털어놓거나 상담을 하고 나오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이 행장은 어디서든 ‘3분 대화법’을 쓴다. 진심이 통하려면 3분 이상 눈을 마주치며 대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이 행장이 국내를 넘어 해외 곳곳의 현장을 자주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직원들에게도 틈틈이 이 대화법을 전파한다. “어떤 일이든 공감대를 쌓아야 제대로 진행됩니다.”


뼛속부터 농업인…현장 전문가로

이 행장은 25세부터 35년째 농협에 몸담고 있다. 경기 포천 농촌에서 태어나 농협대를 나오는 등 농협과의 인연도 깊다. 지역농협에서 농협중앙회, 농협은행, 농협상호금융에 이르기까지 농협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

사회생활 출발점인 포천농협에서의 경험은 ‘현장주의’ 철학의 기반이 됐다. 금융업무와 경제사업을 두루 챙기다 보니 가봐야 할 현장이 많았다. 매일 밤낮 없이 지역 현장을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현장 상황은 문서로 보고된 것과 달랐다. 직접 가보고 겪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2016년 서울지역 영업본부장 시절, 만년 꼴찌이던 서울을 전국 상위권으로 올려놓은 비결도 현장을 꼼꼼히 챙긴 데 있다는 게 이 행장의 얘기다. 당시 서울 영업점은 170여 개. 그는 매일 다른 영업점으로 출근하면서 서울지역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모두 만났다. 영업 실적이 돋보이는 직원의 노하우를 다른 지점에 전수해 주기도 했다. ‘현장 경영’이 성과를 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래 동력 확보 위해 ‘글로벌 열공’

이 행장은 농협을 구석구석 아는 만큼,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꿰고 있다. 그는 글로벌 사업에서 유난히 뒤처진 게 농협은행의 취약점이라고 봤다. 농협은행이 해외에 진출한 것은 2013년이다. 다른 국내 은행들이 2000년대 초부터 해외 사업에 나선 데 비해 출발이 늦었다. 그나마 시작한 해외 사업은 시장 동향 파악 수준에 그쳤다.

이 행장은 2017년 12월 취임하자마자 ‘글로벌 전략’부터 새로 짰다. 국내 기반만 믿고 글로벌 사업을 소홀히 하면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포화됐다”며 “지금이라도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행장은 역대 농협은행장을 통틀어 가장 많은 해외 출장 기록을 세웠다. 과거엔 1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한 분위기였다. 그는 “직접 가서 현장을 챙겨야 각 국가에서 신뢰를 쌓고 신사업도 모색할 수 있다”며 바쁜 일정을 쪼개 해외 출장에 수시로 나섰다. 올 들어 다녀온 곳만 홍콩, 인도네시아, 미얀마, 미국 뉴욕, 중국 베이징, 호주 등 6개국에 달한다.

이 행장은 농업 기반이 강한 동남아시아를 1차 공략지로 잡았다. 농협은행의 강점인 농협금융 노하우를 이용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농협은행은 미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중국 인도 등 6개국에 법인, 지점, 사무소를 두고 있다. 동남아시아에 확고한 해외 사업 거점을 두고 성장잠재력이 높은 곳으로 꾸준히 영토를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2~3년 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벨기에 브뤼셀, 남미까지 진출하는 계획도 짜놨다.

이 행장은 글로벌 사업의 성공을 위해 ‘현지 전문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현지 속성과 관습을 촘촘히 알고 체계화하는 ‘농협은행표’ 현지 전문가를 양성해 파견한다는 계획이다.

실무자와 수시 소통…디지털도 키운다

이 행장은 평소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자주 만난다. 임원들이 주로 드나드는 일반적인 행장 집무실과는 풍경이 다르다. 특히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등 세 개 부문에 대해선 실무자들이 직접 보고하는 체계다. 부서별 사업 진행 상황, 주요 현안 등을 종합기획부가 모아 행장실에 보고하던 방식도 바꿨다. 이 행장이 농협상호금융 대표 시절부터 이어온 경영지침이다. 빠른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다.

이 행장은 “의사 결정에 이르는 거리를 줄여야 더 신속하게 움직이면서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장을 누비는 직원들과 자주 만날수록 현장의 애로사항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매달 ‘위드 최고경영자(CEO)’라는 이름으로 직원들과 소모임을 하기도 한다. 이때도 어김없이 3분 대화법이 유용하게 쓰인다. 현장에 필요한 아이디어도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는다고 한다.

요즘은 디지털 현장에 푹 빠져 있다. “글로벌과 디지털이란 두 가지 축을 농협은행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이 행장은 말한다. 그는 지난 6월부터 1주일에 한 차례 서울 양재동에 있는 NH디지털혁신캠퍼스로 출근하고 있다. 이곳엔 농협은행의 디지털 연구개발(R&D) 직원 20명이 근무한다.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33개도 입주해 있다.

은행장이 본점이 아니라 다른 곳에 집무실을 마련하고, 매주 이 집무실에 근무하러 가는 건 이례적이다. 집무실에는 ‘디지털 콕핏(cockpi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콕핏은 비행기 조종석을 뜻한다. 이 행장이 직접 디지털 전략과 방향을 협의하고 조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직원들과 수시로 자유 토론을 하며 디지털금융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명함까지 바꿨다. ‘행장’이라는 직함을 빼고 ‘이대훈 디지털 익스플로러(탐험가)’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닌다. 이 행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행장 업무 중 절반 이상을 디지털사업에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상품 기획, 마케팅, 직원 업무환경 등을 디지털 중심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기존 디지털담당 부행장이 주도하던 ‘4차 산업혁명 회의’도 직접 맡기로 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농협은행이 최근 다양한 측면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농협은행 하면 ‘디지털 1등 은행’을 떠올릴 정도로 디지털사업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게 이 행장의 생각이다.

■ 이대훈 행장 프로필

△1960년 경기 포천 출생
△1979년 동남종합고 졸업
△1981년 농협대 협동조합과 졸업
△1985년 농협중앙회 입사
△1996년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 졸업
△1998년 중앙대 대학원 유통산업학과 졸업
△1994년 농협안성교육원 조교수
△2001년 농협중소기업센터출장소장
△2004년 농협은행 경기도청출장소장
△2009년 서수원지점장
△2010년 광교테크노밸리지점장
△2012년 프로젝트금융부장
△2014년 경기영업본부장(부행장보)
△2016년 서울영업본부장(부행장보)
△2016~2017년 농협상호금융 대표
△2017년 12월~ 농협은행장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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