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영국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브렉시트 시한인 오는 10월31일을 불과 두달여 앞두고 양측이 계속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EU는 20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합의안의 핵심 쟁점인 ‘백스톱(backstop·안전장치)’ 폐기 관련 재협상을 하자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제안을 거부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백스톱에 반대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 (영국의) 행위는 사실상 국경 재건설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EU는 지난해 11월 브렉시트와 상관없이 영국 전체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당분간 잔류하도록 하는 백스톱 조항을 담은 협정을 체결했다. 영국을 EU 관세 동맹에 잔류시키면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국경에서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하드 보더’ 충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취임한 존슨 총리는 백스톱 조항 폐기와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이 관세동맹에 잔류하면 EU 탈퇴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존슨 총리는 지난 19일 투스크 상임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하드보더를 막기 위해 백스톱을 대체하는 ‘특정 협약’을 맺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투스크 의장과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재협상은 결코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존슨 총리는 EU의 이 같은 결정을 비난했다. 그는 영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EU는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를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양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인내심이 좀더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유럽 언론들은 EU와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로 상대방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양보를 기다리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U측은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EU보다 영국이 보는 피해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U가 브렉시트 협상에 소극적인 배경이다. 브렉시트 시한을 또 다시 연기할 경우 EU가 영국에 계속 끌려다닌다는 모습으로 비춰질 것도 우려하고 있다.
영국은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를 담당하는 마이클 고브 영국 국무조정실장도 지난 19일 BBC 등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딜 브렉시트를 앞두고 혼란이 예상된다”며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EU와의 새로운 브렉시트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영국은 향후 브렉시트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관철하기 위해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영국은 지난 19일 오는 10월31일 EU를 탈퇴하는 순간부터 EU 회원국 간 보장해 온 ‘이동의 자유’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EU 회원국에선 한 국가처럼 자유롭게 오가며 거주권과 직업활동을 보장했지만 영국 정부는 과도기 없이 이를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다음달부터 EU가 주재하는 회의들에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유럽 언론들은 존슨 총리가 EU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해 잇따라 강수를 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오는 24~26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앞서 프랑스와 독일 정상을 만나 브렉시트를 논의할 계획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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