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선데이 호캉스'

입력 2019-08-21 17:38   수정 2019-08-22 00:21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쿠바의 암보스문도스호텔을 좋아했다. 아바나에 있는 이 호텔은 전망이 뛰어난 데다 맛있는 식당과 푸른 바다를 끼고 있다. 그는 이 호텔 511호에 방을 잡고 느긋한 휴식을 취한 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명작을 썼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심신을 추스르며 글을 썼다.

이들에게 호텔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긴장을 풀면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호텔에는 집처럼 자잘한 생활의 걱정거리가 없다. 호텔(hotel)의 어원은 여행자를 위한 숙소(hospitale),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hospital)이다. 휴식을 위한 쉼터와 치유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구에서는 호텔에 머물며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이 오래전 보편화됐다. 한국에서는 2~3년 전에 ‘호캉스(hotel+vacance)’라는 휴식 문화가 등장했다. 더위를 피해 쾌적한 호텔 방과 수영장에서 여유를 즐기고, 고층의 ‘루프톱 풀’에서 야경을 감상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는 ‘먹캉스’ 방식이 대세다.

최근에는 투숙객이 붐비는 금·토요일을 피해 한가한 일요일에 호텔을 찾는 ‘선데이 호캉스족(族)’이 늘고 있다. 서울 주요 호텔의 올 상반기 일요일 객실 점유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25% 높아졌다.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이가 급증하면서 이런 수요는 더 늘어날 모양이다. 호텔들도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혼남녀들이 짧은 명절 연휴를 호텔에서 보내려는 ‘숏캉스(short+vacance)’와 비수기인 가을철에 휴가를 쓰려는 ‘추(秋)캉스’도 새로운 트렌드다.

국내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휴식만을 위한 여행’을 원하는 응답자가 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도심 속 ‘호캉스’(39%), 나만의 휴식을 즐기는 ‘혼자 여행’(29%), 건강과 힐링에 집중하는 ‘웰니스 여행’(18%) 수요가 높았다. 20대의 ‘호캉스’ 선호는 53%나 됐다.

휴식은 심신의 활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샘물과 같다. 잘 쉬어야 업무 효율과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팡세>의 저자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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