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서버 접속 속도를 고의로 떨어뜨렸다며 방송통신위원회가 물린 과징금에 반발해 제기한 소송에서 ‘완승’했다. 국내 통신회사들이 페이스북, 구글, 넷플릭스 등 외국 인터넷기업과의 통신망 이용료 협상에서 불리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구글 무임승차에 ‘면죄부’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박양준)는 22일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3월 페이스북이 서버 접속 경로를 임의로 바꿔 접속 속도를 떨어뜨려 국내 이용자의 편의를 해쳤다며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페이스북은 이에 “접속 경로 변경은 비용 절감 등 사업 전략의 하나로, 이용자 피해를 유발할 의도가 없었다”며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이 접속 경로를 변경한 것은 이용자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는 맞지만,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된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터넷 콘텐츠 사업자(CP)에 접속 속도 등 서비스 품질 관리와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는 명확한 규정이 없는 한 규제 폭을 넓히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외국 CP의 ‘무임승차’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세 개 글로벌 정보기술(IT)업체의 국내 트래픽 점유율은 연간 50% 안팎으로 추정된다.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5월 유튜브의 안드로이드폰 동영상 앱 사용시간 점유율은 88%로 압도적이다. 이들은 이를 기반으로 광고료와 구독료 등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통신·인터넷업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2015년부터 연간 100억~150억원 정도를 KT에 낸다. 올해부터는 SK브로드밴드에도 망 이용료를 지급하고 있다. 구글은 국내 통신사에 망 이용료를 거의 내지 않고 있다. 매년 수백억원의 망 이용료를 부담하는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 등과 비교된다. 아프리카TV는 연간 매출의 20%에 달하는 망 이용료를 내고 있다.
정부는 이런 역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망 이용료 가이드라인 도입을 추진 중이다.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외국 CP에도 망 이용료를 부과하기 위해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망 이용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외국 CP의 무임승차를 막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방통위·통신사 “망 이용료와 별개 건”
과거 통신망 품질관리는 온전히 통신사의 몫이었다. CP는 망 이용료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네이버를 비롯해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글로벌 공룡 CP가 엄청난 트래픽을 발생시키자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통신사가 아무리 비용을 들여 통신망 관리에 만전을 기해도 트래픽이 폭증하면 속수무책이다. 이를 감안해 CP도 통신망 품질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지고, 일정 수준의 망 이용료를 부담해야 한다고 통신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이번 판결로 이런 주장의 설득력이 약해졌다.
방통위와 통신사는 패소 소식을 접하자 “망 이용료와는 별개의 건”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이 외국 CP와의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선 긋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 이익을 침해했는지에 대한 판단이지, 망 이용료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도 “망 이용료와는 별개 문제”라며 “바로 항소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통신망 구축 비용을 통신사가 떠안게 되면 장기적으로 이용자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통신요금이 높아질 것이란 얘기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 등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대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CP가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용자 침해가 발생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변경으로 인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가입자가 접속 장애 피해를 입은 것이 명백한데도 페이스북이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또 다른 CP가 비슷한 조치 등을 취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설리/김주완/신연수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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