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대담 출연한 강경화 장관…"한국은 일본에 매우 화났다" [강경민의 지금 유럽은]

입력 2019-08-23 09:42   수정 2019-08-23 09:56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은 주요 기술 부품과 재료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며 “일본에 비해 한국 경제는 취약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렇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며 “한국인들은 매우 일본에 화가 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BBC의 대담 프로그램인 하드토크에 출연했다. 하드토크는 BBC 기자인 스티븐 새커 앵커가 전 세계 저명인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인기 대담 프로그램이다. 각국의 대통령 및 총리 등에게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드토크에 한국 정부 각료가 대담자로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새커 앵커와 강 장관의 대담은 화상 인터뷰 방식으로 25분간 진행됐다. 이 중 15분가량이 일본과의 무역 갈등에 할애됐다. 우선 새커 앵커는 강 장관에게 현 상황이 일본과의 경제적 관계뿐 아니라 안보 및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까지 위태로운 상태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할지 여부에 대해 질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담은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공식 발표하기 전에 이뤄졌다.

강 장관은 “우리는 문제를 최소화시키고 싶다”며 “일본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옵션들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대안까지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측으로부터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강 장관은 “우리는 여전히 일본과 이 문제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새커 앵커는 “솔직히 일본이 한국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강하지 않느냐”며 “삼성과 같은 한국 최대 기업들은 주요 기술 부품이나 재료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보다는 일본이 더 많은 카드를 쥐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한국의 수출 산업은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도 새커 앵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일본과의 무역에서 항상 우리는 적자를 봤다”며 “아시다시피 우리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렇게 의존하고 서로 교류하는 상황임에도 일본이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새커 앵커는 강 장관에게 “매우 화가 난 것 같다”고 했다. 강 장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일본에 화가 나 있다”며 “일본이 아직까지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강 장관은 “과거 어려운 시기를 살아왔던 생존자들은 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제대로 발언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더 깊게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이 일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문제점을 더 지적하려고 하자 새커 앵커는 “이해하지만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북한 및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며 화제를 바꿨다. 새커 앵커는 일본뿐 아니라 한·미 외교관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이 긴장 관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현재 미국과 일본 모두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입지가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장관은 “미국과는 각종 현안에 대해 긴밀하게 상의하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서도 매우 좋은 관계”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새커 앵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외교 전략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물어봤다. 강 장관은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과의 핵 협상이 현재 소강 상태에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2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커다란 변화”라고 말했다.

새커 앵커는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비 명목으로 5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강 장관의 의견을 또 다시 물어봤다. 강 장관은 “미국 측의 의사를 파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 입장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의 분담금 규모를 정하기 위해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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