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가 OOO-××××로 바꼈어요.” “그는 그녀와 중학교 때부터 사겼다고 한다.” “그 여자는 내 말에 콧방귀만 꼈다.” 이런 말에는 공통적인 오류가 들어 있다. ‘바꼈어요, 사겼다고, 꼈다’가 그것이다. 각각 ‘바뀌었어요, 사귀었다고, 뀌었다’를 잘못 썼다.
한글 모음자에 ‘ㅜ+ㅕ’ 없어 더 이상 줄지 않아
이들의 기본형은 ‘바뀌다, 사귀다, 뀌다’이다. 공통점은 어간에 모두 모음 ‘ㅟ’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뒤에 모음 어미 ‘-어’가 붙을 때 줄어들지 않는, 우리말의 독특한 모음 체계 한 가지를 보여준다.
얼핏 보기에 ‘바뀌+어→바껴’로 줄어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모음끼리 어울려 ‘-여’로 바뀌는 것은 어간 ‘이’와 어미 ‘-어’가 결합할 때다(한글맞춤법 제36항). ‘가지어→가져, 견디어→견뎌, 막히어→막혀’ 같은 무수한 말들이 모두 그렇게 줄었다. 그러면 예의 ‘바뀌다, 사귀다’ 등에 어미 ‘-어’가 어울리면 어떻게 바뀔까? ‘~이어→~여’의 원리를 적용하면 ‘ㅟ어→(ㅜㅕ)’, 즉 ‘바(꾸ㅕ), 사(구ㅕ)’쯤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모음 체계에는 이를 나타낼 글자가 없다. 컴퓨터 자판으로도 조합이 안 돼 두 글자로 써야 할 판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부터 없던 것이다. 한글 자모는 자음 14개, 모음 10개로 24자다. 모음만 보면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이다. 이 10개 모음자로 적을 수 없는 소리는 두세 개를 합쳐 적는데, 그것은 ‘애, 얘, 에, 예, 와, 왜, 외, 워, 웨, 위, 의’ 11자다(한글맞춤법 제4항). 즉 모음으로 적을 수 있는 글자는 모두 21개라는 뜻이다. 여기에 ‘ㅟ+어’가 어울려 생길 만한 ‘(ㅜㅕ)’란 글자는 없다. 결국 ‘바뀌어, 사귀었다, 뀌었다’ 등은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표기할 글자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발음상으로는 이를 줄여 말하곤 한다. 이런 모순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어학계 일각에서는 “모음자 ‘ㅜㅕ’를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이동석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말과글> 2017년 여름호)
‘적지 않다’가 줄면 ‘적쟎다’ 아닌 ‘적잖다’로
맞춤법은 각각의 단어를 아는 것보다 원리원칙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앞에서 살폈듯이 어간의 모음 ‘이’ 뒤에 어미 ‘-어’가 오면 ‘-여’로 줄어드는 게 우리말 일반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귀찮다’도 ‘귀챦다’로 적는 것으로 아는 이가 꽤 있다. ‘귀하지 아니하다→귀치 않다→귀챦다’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치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현행 맞춤법(1988년)이 시행되기 전에는 그렇게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틀린 표기다. ‘귀찮다’로 적어야 한다. 이는 줄어진 형태가 또 하나의 단어가 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태여 그 원형과 결부시켜 준 과정의 형태를 밝힐 필요가 없는 것이므로, 소리 나는 대로 ‘-잖다’ ‘-찮다’로 적기로 했다. 맞춤법 제39항에 나오는, 준말의 여러 규정 중 하나다. ‘같잖다, 달갑잖다, 마뜩잖다, 시답잖다, 어쭙잖다, 적잖다, 괜찮다, 변변찮다, 편찮다’ 등과 같은 말이 이 같은 원리로 단어가 돼 사전에 올랐다.
이 원리를 알고 있으면, 나머지 말들은 여기에 준해 쓰면 된다. 모든 단어를 사전에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두렵지 않다” “그렇지 않아”를 줄이면 ‘두렵잖다’ ‘그렇잖아’가 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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