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불거진 미국과의 불협화음은 그런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청와대는 “미국이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미국에선 “우리에게 알려준 것과 정반대”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 국방부가 “한·일 이견 해소를 위한 신속한 협력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냈다가 몇 시간 뒤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고 반응수위를 높인 것도 전례없는 일이다.
지소미아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거나 일본 수출규제의 맞대응 카드로 여긴 것부터가 큰 오산이다. 우리 군은 북한이 동해상으로 쏴대는 미사일 정보를 파악할 수단이 없어 일본 정찰위성 정보에 의존해온 게 현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지소미아가 체결된 배경에는 이를 한·미·일 안보동맹의 상징으로 삼은 미국의 강한 설득이 있었다. 그런 지소미아를 청와대가 일방 파기한 것은 곧 동북아 안보협력의 심각한 균열을 의미한다. 미국 조야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의 실망스런 정치적 결정’이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일본의 우려와 반대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웃음짓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미 간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연내 방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한국으로선 더 복잡하고 험난한 외교·안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이 자기 발등에 총을 쏘고 있다”는 미국 뉴욕타임스의 지적은 괜한 얘기가 아니다.
지소미아 파기가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는 가늠조차 쉽지 않다. 지소미아 연장을 전제로 했던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중재는 물 건너갔고, 동맹 유지비용은 더욱 커질 게 뻔하다. 일본에선 ‘3차 수출규제’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까지 나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고, 이제는 한·일보다 한·미 관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국내 경제계의 한탄이 지금의 상황을 함축한다.
외교·안보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국가 자존심을 세우는 것도 그럴 만한 실력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지소미아 파기로 기대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이 전혀 없는데 설명도 미흡하니 ‘조국(법무부 장관 후보자) 구하기’, ‘반일감정 부추기기’ 같은 비판이 무성해진다. 무엇을 위한 ‘결단’인지, 외교안보의 큰 그림은 무엇인지 청와대는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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