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면 보복전
지난 23일 보복전의 포문은 중국이 열었다. 중국은 이날 미국산 자동차에 25%, 원유와 콩 등 750억달러어치 미국 제품에 10%와 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관세 부과는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이는 이달 초 미국이 30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9월과 12월 두 번에 나눠 1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이로써 중국은 사실상 미국 제품 전체에 고율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미국산 원유는 이번에 처음으로 관세폭탄을 맞게 됐다.
그로부터 12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 제품 전체(5500억달러)를 대상으로 원래보다 관세를 5%포인트 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현재 25% 관세가 적용되는 2500억달러어치 제품에 대해선 10월부터 관세율을 30%로 올리기로 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모두 고율관세의 상한선은 25%였다. 이번에 ‘관세율 천장’이 깨지면서 앞으로 무역전쟁 상황에 따라 관세율이 천정부지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주목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보복 전 트윗에서 “우리는 중국이 필요 없다”며 “솔직히 중국이 없는 게 더 낫다”고 한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들은 즉시 중국에 대한 대안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미 기업들에 사실상 중국과의 ‘거래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24일엔 대통령이 국가 안보에 필요할 경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국가비상경제권법’을 거론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이 권한을 발동하면 1970년대 중국과의 외교관계 개시 이후 가장 중대한 중국과의 단절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외 북한, 베네수엘라, 수단 등과 관련해 이 권한을 발동했다.
9월 ‘워싱턴 협상’ 무산되나
당장 9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예정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류허 중국 부총리 등의 고위급 무역협상이 불투명해졌다. 미·중은 지난 6월 말 ‘무역전쟁 휴전’ 후 한 달 만인 7월 말 중국 상하이에서 만났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이 협상 결과를 보고받은 직후 30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10%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고 이는 ‘휴전 종료’로 해석됐다.
미 월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11월 대선 때까지 미·중 대결구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강경론이 득세하면서 무역갈등 해법이 보이지 않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중국과 어설픈 합의를 하느니 차라리 ‘노딜(협상 결렬)’이 유리하다는 근거에서다.
중국도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5일 사설에서 “시간은 중국 편”이라고 경고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중국은 끝까지 싸울 능력이 있다”고 항전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만난 뒤 중국과의 무역전쟁과 관련, “재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갈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왜 안 그렇겠느냐”고 답했다.
일부 언론은 이 발언을 두고 유화적 제스처라고 해석했으나 스테파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그리셤 대변인은 “대통령의 답변이 매우 잘못 해석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더 높이 올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비상경제권법
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국가 안보상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발생할 경우 미국 대통령이 상대국을 경제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안. 1977년 제정됐다. 미 대통령은 이 법에 의거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외환과 무역 거래 등을 차단할 수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베이징=강동균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