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소재·부품산업 육성은 혁신의 시작

입력 2019-08-26 17:37   수정 2019-08-2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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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왔듯이 산업도 늘 새로운 도전과 상황에 맞는 성장 경로를 찾아내고 진화해왔다. 한 번 만들어진 경로는 익숙함과 변화에 따르는 기회비용 등으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2000여 년 전 로마군이 영국을 정복하려 할 때 마차를 사용했고, 그 마차의 바퀴 간격이 1814년 조지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 철도 레일의 폭인 1.43m로 굳어졌다. 로마시대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의 바퀴 폭이 오늘날 고속철도가 달리는 레일 폭이 된 것이다.

변화의 시대, 혁신의 시대에는 때로 기존의 성장 궤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산업은 글로벌 분업구조 아래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한 추격형 발전 전략으로 세계 6위 제조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미래 경쟁력의 뼈대인 소재·부품산업은 제조업 성장을 뒷받침하면서 2001년 대비 생산 세 배, 수출 다섯 배 등 외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만 특정 국가에 대한 핵심 품목의 의존은 지속돼 왔다. 국내 자체적인 공급망도 기대보다 부족한 상황이다. 보호무역주의 등 대외 환경 변화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는 국내 주요 산업의 생산과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고, 국가 안보에도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의 산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극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소재·부품·장비산업이 제조업 혁신을 이끌고 시장의 돌파구를 만드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을 통해 제조업 성장의 레일을 새롭게 깔고, 그동안의 성장 경로를 바꾸는 혁신을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대외 환경 변화에도 흔들림 없는 공급망을 구축해 특정 국가 의존을 획기적으로 낮춰 나갈 것이다. 어렵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재·부품·장비산업에서 진정한 승부수를 띄워야 할 변화의 시점에 서 있다.

정부는 지난 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산업 공급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100대 핵심 전략 품목에 대해선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조기에 자체 기술력을 쌓아 선진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대규모 재원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비교 우위에 바탕을 두고 전략적으로 기술을 확보해 나갈 것이다.

단기간에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인수합병(M&A), 해외 기술 도입, 해외 기업 국내 유치 등 개방적인 협력을 통해 기술을 축적해야 한다. 소재·부품·장비산업 내에서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자체 공급망이 튼튼하게 만들어지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수요·공급 기업이 협력해 제시하는 다양한 모델에 대해선 자금, 세제, 금융, 입지 등 범(汎)정부 정책 수단을 결집해 패키지 방식으로 강력하게 지원할 것임을 약속한다.

무엇보다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 정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되게 추진할 체계를 구축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컨트롤타워로 ‘경쟁력위원회’를 신설하고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위해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을 20년 만에 전면 개편할 계획이다.

우리 산업은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성장해온 저력을 갖고 있다. 이번 위기는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제조업 혁신의 길로 나아갈 기회이기도 하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길이라면 먼 길도 가깝게 느껴진다(Good company makes the road shorter)’는 속담이 있다.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이 좋은 친구로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성장 잠재력 발굴과 육성에 힘을 모으고 새로운 산업의 지형을 만들어 나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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