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친구'와 '적' 사이

입력 2019-08-26 17:38   수정 2019-08-27 00:33

‘선이냐, 악이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분법을 즐겨 쓴다. 그의 ‘편가르기 전략’은 어법에서도 나타난다. 주요 현안을 ‘좋은 일’과 ‘나쁜 일’로 나누고, 국제 관계를 ‘친구’와 ‘적’으로 양분한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뒤집기도 한다. 미·중 무역전쟁 초기에 “내 친구”라고 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그저께는 “적(enemy)”이라고 불렀다.

북한 김정은과의 관계도 ‘적’과 ‘친구’ 사이를 오간다. 1년 전까지 ‘화염과 분노’ 등 자극적인 표현으로 대북 압박에 나섰던 그가 미·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내 친구 김정은”이라는 표현을 쓰며 유화 몸짓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이 “불장난 좋아하는 불한당, 깡패, 노망난 늙은이를 불로 다스리겠다”고 했던 일은 잊은 듯한 모습이다.

친구(親舊)는 가까이(親) 오래(舊) 사귄 벗을 말한다. 친한 벗을 붕우(朋友)라고도 한다. ‘벗 붕(朋)’자는 조개를 끈으로 나란히 엮은 모양이고, ‘벗 우(友)’자는 두 손을 서로 맞잡은 형태다. 인디언들이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부를 만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곧 친구다.

‘대적할 적(敵)’자는 ‘밑동 적()’자와 ‘칠 복()’자를 합한 글자다. 뿌리 깊은 한을 갚기 위해 싸우는 상대를 뜻한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권력이 ‘적 만들기(enemy-making)’를 통해 집단혐오를 부추기면 ‘정치화된 대중’은 쉽게 증오에 빠져든다”고 분석했다.

국제 관계에서는 친하지 않은 나라끼리도 ‘공동의 적’ 앞에서 힘을 합친다. 때로는 ‘적과의 동침’도 불사한다. 교역 규모가 커지면서 국가 간, 경제블록 간 힘겨루기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 등 전통 우방과의 경제전쟁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누가 친구이고 적인가. 일본과 외교·안보·경제적으로 대립하고, 중국과 러시아에는 영공을 유린당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과 막말, 조롱을 연일 퍼붓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김정은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 친구와 적을 구별하기 어려운 ‘프레너미(friend+enemy)의 함정’에 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예부터 “적을 만들기는 쉬워도 친구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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