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한국의 봉독과 중국의 개똥쑥

입력 2019-08-27 18:00   수정 2019-08-28 00:27

‘천연물 신약 1호’ 아피톡신(Apitoxin)이란 주사제가 있다. 관절염과 인대 통증 치료제로 사용하는 의약품이다. 주성분은 봉독(蜂毒), 즉 벌의 침에 있는 독이다. 중견 제약회사인 구주제약이 한의학에서 관절염 환자에게 벌의 독침을 쏴 통증을 치료하는 것에서 착안해 개발했다.

봉독이 신약으로 진화했지만 정작 한의사들이 이 약을 써도 되는지는 모호해졌다. 현행 약사법에는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인 신약을 처방할 수 있는 주체로 명시돼 있지 않아서다. 한의사들은 “천연물 신약은 한의학적 처방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한의사)에게도 처방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의사들은 “현대의학적 과정을 거쳐 신약으로 탄생됐기 때문에 의사만 처방권을 가진다”고 반박하고 있다.

심각한 의료계 직능이기주의

의사와 한의사 간 영역 다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제한된 의료·보건시장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양측은 엑스레이 등 의료기기 사용을 두고 수십 년간 고소와 맞고소를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툼이 다시 전문의약품 분야로 옮아붙었다. 한의사들이 엑스레이 사용을 반대하는 의사들에게 맞서 국소마취제를 한방 진료에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한의사협회는 “마취제 등 한방 의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쓰이는 전문의약품은 의료인인 한의사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협회는 “한의사의 의료기기와 전문의약품 사용은 ‘의학’과 ‘한의학’으로 구분된 현행 의료체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의사와 한의사 간 영역 나누기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의학산업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동양의학이 발전한 한·중·일 3개국 중 한국만 유일하게 양·한방 협진이 사실상 어렵다. 미국과 독일 등 주요 선진국 병원에서 침, 뜸, 한약 등을 ‘대체의학’이라고 부르며 치료에 적극 활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은 전통의학인 중의학(中醫學)과 서의학(西醫學)으로 구분돼 있지만 중의사와 양의사가 모든 의료기기와 치료법을 공유한다. 개똥쑥으로 만든 말라리아 치료제로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를 배출한 중국 의학계의 저력도 중의학과 서의학의 협진 및 이를 통한 중의학의 과학화 덕분이다. 일본은 모든 의과대학에서 전통의학인 화한의학(和漢醫學)을 가르치고 있다.

협업·융합과 먼 한국 의료산업

중국과 일본은 세계 한방제약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한방제약 전문회사인 중국의 톈스리제약(21억7000만달러)과 일본 쓰무라제약(10억7110만달러)은 2017년 기준으로 연매출이 10억달러(약 1조2130억원)를 넘는다. 이들 회사는 미래 신약으로 꼽히는 생약 성분의 당뇨, 암,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은 의학 분야 간 ‘협업’과 ‘융합’이라는 세계적인 추세와 거꾸로 가고 있다. 한의사가 간단한 진단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으로 한방의약품 개발이 지체돼 한방산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상당수 한방제약사의 매출이 50억원을 넘지 못할 정도로 영세하다.

의사와 한의사 간 ‘의료 단일화(면허 단일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2015년부터 교과 과정과 면허를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주도권 싸움에 여념이 없다. 의료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는 양측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학 간 융·복합도, 한방의 산업화도 요원하다. 환자의 편익에 기반을 둔 정부의 적극적인 갈등 조정이 요구된다.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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