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은 하나의 클러스터(집적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남동·반월·시화 등 수도권 산단은 자동차·전자·기계부품업체와 도금·주물·금형 등 제조의 기반을 지탱하는 뿌리기업이 밀집해 있다. 산단을 이대로 방치하면 중소 제조업체의 몰락을 넘어 제조업 생태계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대내외 여건이 호전돼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인들이 다시 뛸 수 있게 하려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환경규제, 가업승계를 막는 세제 등 정책의 전면 재검토와 함께 산단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미국이 자랑하는 실리콘밸리 등 선진국 혁신클러스터들은 기존 산단이 신기술·신산업의 등장과 대내외 경제환경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해온 결과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혁신클러스터는 미국의 디지털 혁명,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산업, 독일의 스마트팩토리 등의 플랫폼 역할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산단은 기업들이 몰려들기는커녕 해외로 떠나거나 문을 닫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권마다 산단을 제조업 혁신이나 신산업 창출의 전진기지로 만들자는 화려한 정책들을 내놨지만 그때뿐이었다. 이번 정부도 산단을 스마트·친환경·융복합 혁신 테스트베드로 조성한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2030년까지 스마트산단을 20개 조성한다는 계획도 공허하게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신산업 육성, 제조와 서비스 융합을 위해 산단 입주 가능 업종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문제도 그렇다. 정권마다 들고나오는 단골 메뉴이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과 연구·교육시설이 집적화된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혁신 클러스터가 나오기 어렵다. 정부가 말하는 ‘제조업 르네상스’가 가능하려면 산단부터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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