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에서 대법원이 공무원 직권남용죄의 기준을 명확히 해 줄지, 한다면 어떤 내용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직권남용죄는 사문화되다시피했던 조항이었으나 박 전 대통령이 기업들에게 후원금을 내라고 압박한 혐의가 일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공직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오후 2시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씨에 대한 국정농단 3심을 선고한다. 표면적으로는 이들 사이의 뇌물수수액과 경영권 승계 청탁·재산국외도피죄 인정 등이 재판의 큰 축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죄 법리가 정립되는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판사 대부분의 혐의가 직권남용인 데다 향후 공무원들의 일처리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어서다.
직권남용죄(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하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검찰은 2017년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직권을 남용해 미르·K스포츠 재단 후원금을 내라고 압박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난 3년간 하급심은 재판부별로 직권남용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며 유무죄를 엇갈리게 내놨다.
법조계에 따르면 직권남용은 ‘적폐청산’을 위한 ‘전가의 보도’로 활용된 이후 검찰의 공직 부패 사건 기소에서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거의 기소가 되지 않아 판례도 얼마 없었는데 최근에는 심리를 해야할 직권남용 사건이 급격히 늘었다”며 “이번 판결을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일부 법조인들은 대법원이 직권남용죄의 범위를 넓히지 않을까 우려한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직권남용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고 공직 사회를 얼어붙게 해서 보신주의 강화할 수 있다”며 “가급적 엄격하게 해석하게 법 제정 취지에 맞다”고 주장했다.
일부 판사들은 직권남용죄 남발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업무상 배임죄와 더불어 구성요건이 불분명한 대표적 범죄가 직권남용죄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기업인의 경영 행위와 관련해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하는 건수가 급증하자 2004년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해 일부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직권남용죄가 모호하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사를 신청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은 직권남용죄에 대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했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규정”이라며 얼마 전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사건의 분수령이 될 이번 재판은 모든 과정이 TV로 생중계된다. 피고인들은 재판 참석 의무가 없으며 판결에 따라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이날 최종 판결문은 재판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읽는다. 사안이 방대한 만큼 낭독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법관 13명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다수결로 결론을 내고 소수 대법관들의 반대의견이 실명으로 따로 발표된다. 일반적으로 대법관들의 반대의견은 파격적인 경우가 많아 어떤 내용이 나올지도 재판의 관심 포인트다.
대법관 구성은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대법관이 김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대법관이 맡는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을 하지 않음) 가운데 9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김 대법원장과 노정희 박정화 대법관 그리고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김상환 대법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출신 김선수 대법관 등이 진보 성향 대법관으로 분류된다.
김리안/신연수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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