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뺨치는 고용부 근로감독…기업들 '벌벌'

입력 2019-08-28 17:36   수정 2019-08-29 02:15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정보기술(IT)·게임업체에 대한 근로감독 과정에서 1000만 건이 넘는 사내전산망 출입 기록을 분석해 근로자 2000여 명의 초과근로를 확인하고 연장근로수당 44억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임금체불 진정 사건이 접수된 한 기업에 대해서는 출퇴근 기록이 없어 확인이 어렵자 카카오톡과 휴대폰 문자메시지 대화를 분석하고 포맷된 하드디스크를 복원해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정부의 노동관계법 위반 수사와 근로감독이 첨단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종이 서류 확인이나 대면 수사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검찰에서 주로 활용하는 수사 기법인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을 활용한 첨단 수사 기법이 동원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법 위반 사범을 적발하고 행정 효율성을 제고하는 긍정적 측면이 크지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정보 수집으로 기업 경영상 비밀 노출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반기에만 418건 디지털포렌식

고용부는 올해 상반기 노동관계법 수사 및 근로감독 과정에서 총 418건의 디지털 포렌식 기법이 활용됐다고 28일 발표했다. 2017년 245건, 2018년 251건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디지털 포렌식은 컴퓨터, 스마트폰, 폐쇄회로TV(CCTV) 등 디지털 자료의 위·변조 탐지, 복원, 문서 분석 등을 통해 증거를 찾는 과학수사 기법이다. 혈흔이나 지문을 통해 범인의 단서를 찾는 과학수사(포렌식)에서 유래했다.

올해 디지털포렌식을 활용한 수사 중에는 근로시간 위반 관련이 139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연장근로 관련 진정이 증가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임금체불 관련은 78건, 부정수급은 37건이었다.

고용부가 밝힌 주요 사례를 보면 A기업이 임신한 직원에게 연장근로를 시키고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하자 사내메신저 대화 기록을 분석해 인사담당자의 사전인지 사실을 확인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임신부의 연장근로는 법으로 금지돼있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가족 명의의 계좌로 회사 자금을 빼돌린 사업주는 자체 개발한 금융계좌 분석 프로그램을 활용해 혐의를 입증하기도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제는 대부분 기업이 인사노무관리를 컴퓨터로 처리하기 때문에 기존의 장부나 종이 서류에 의존해서는 근로감독이 어렵다”며 “게다가 디지털 자료는 삭제와 위조가 쉬워 증거를 은폐할 경우 범죄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범죄와 무관한 기업정보 유출 우려도

고용부가 근로감독에 디지털포렌식 기법을 도입한 것은 2016년 7월 서울고용노동청 광역근로감독과에 디지털증거분석팀을 신설하면서다. 지난해 8월부터는 중부·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전국 6개 노동청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기존의 재래식 수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첨단 수사 기법이지만 ‘엉뚱한’ 곳에 쓰이기도 했다. 2017년 11월 지난 정부의 고용노동 행정 적폐를 바로잡겠다며 출범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고용부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 이를 활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고용부의 디지털 정보 수집이 늘어나면서 혐의와 무관한 정보 유출 등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안 그래도 근로감독관이 매년 가파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수사 강도가 더 세지다 보니 ‘기업 옥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더 커졌다. 경기 고양시의 한 제화업체 대표는 “근로감독이 강화되면서 압수수색하듯 사내 정보를 뒤지는 경우가 빈번해졌다”며 “디지털 수사도 좋지만 기업 경영이 위협받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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