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분분한 靑의 협상 카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 메릴랜드주의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떠나기에 앞서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의 미군기지 반환 요청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한국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We will see what happens)”고 답했다.
앞서 청와대는 이날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결과를 정리한 보도자료를 통해 “총 26개 미군기지의 조기 반환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북 대화, 일본의 경제보복, 지소미아 종료로 인한 한·미 불협화음 등 산적한 이슈를 제쳐둔 채 돌연 해묵은 화제를 끄집어내면서 청와대의 의도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는 ‘돌발적인’ 발표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에 “강원 원주, 인천 부평, 경기 동두천 지역의 4개 기지는 반환이 장기간 지연됨에 따라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주의 ‘캠프 롱’은 2010년 반환이 결정됐지만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새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미국 측을 압박하려는 전략이란 해석이 쏟아졌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해결해야 할 여러 카드를 놓고 그중 약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카드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국방부 “각 부처 의견 모아”
국방부의 모호한 해석도 논란을 증폭시켰다. 국방부 관계자는 “2010년 반환 절차가 시작된 뒤 환경 문제로 오랫동안 협의해왔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장기간 지연됐다”며 “해당 지역에서 강력하게 조기 반환 요청이 제기돼 국무조정실 주재하에 관련 부처들이 의견을 모아 조기 반환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간 쌓인 지역 주민의 불만을 미국 측에 전달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얼마나 많은 양보를 해왔는지 부각한 탓에 자연스레 압박 카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청와대와 국방·외교부는 그러나 한목소리로 미군기지 조기 반환 요구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라 NSC에서 발표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NSC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4개 기지와 관련해서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근거해 8~9년간 협상해왔다”며 “반환 지연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 필요성이 제기돼 조기 반환을 추진하기로 한 것일 뿐, 외교·안보 현안과 연결짓는 건 무리한 해석”이라고 부연했다.
“美가 손해보며 반환하지 않을 것”
외교가에서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수차례 유감을 나타내고 있는 미국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선물을 안겨준 것이란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한 대미 소식통은 “미국에 요구해온 환경 정화 비용을 한국 정부가 감당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라며 “미국이 손해보는 협상을 하며 급히 기지를 반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의 발표를 두고 “우리는 한국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나, 주한미군이 즉각 “용산 기지 등 26개 미군기지를 조기에 반환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고 노력하겠다”고 강조한 것 모두 실보단 득이 많다는 미국 정부의 판단이 깔린 것이란 설명이다.
그간 미군기지 환경 정화 비용은 줄곧 한국 정부가 부담해왔다. SOFA에 환경조항이 신설된 2003년 이후 주한미군이 반환한 기지의 환경 정화 비용을 부담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다. 정부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빠른 이전 요구 등을 고려해 일단 정화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고 추후 미군과 이 문제를 협의해나가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이로 인해 추후 한국 정부가 나머지 기지에서 발생하는 환경 정화 비용을 부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환경 정화 비용만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 측의 양보를 이끌어낼 것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실제 분담금 협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환경 정화 비용을 정부 예산으로 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그만큼 감액을 받지 못하는 최악의 결말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재원/임락근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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