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량 배터리가 판도 바꾼다
전기차의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중국이 보조금을 무기로 전기차 주행거리 늘리기에 본격 나섰다. '㎾h/㎞'로 표시되는 전력효율은 배제한 채 1회 충전 후 주행 가능한 거리(㎞)에 따라 보조금을 주고 있어서다. 그리고 해당 기준 거리는 250㎞다.
물론 보조금 기준은 중국 뿐 아니라 각 나라마다 점진적으로 변해왔다. 주력 동력인 내연기관 중에서도 배출가스를 줄인 제품에 보조금을 주다가 지금은 내연기관 동력을 제외한 친환경 동력에 보조금을 준다. 그러나 중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친환경 동력 중에서도 배터리 기반의 BEV에만 보조금을 주되 '거리'라는 기준을 하나 추가했다. 제조사 스스로 배터리 밀도를 높이거나 자동차 무게 등을 줄여 주행거리 확장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라는 일종의 압박인 셈이다.
보조금 기준에 '거리'가 추가되자 예상대로 지난 7월 배터리 전기차(BEV) 판매는 단숨에 곤두박질쳤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BEV는 6월 대비 4.7% 줄어든 8만대 수준에 머물렀다. 가뜩이나 올해부터 보조금을 줄인 것에 '거리 기준'을 더한 것이니 250㎞를 달리지 못하는 차는 당장 사라져야 할 판이다. 대표적으로 베이징자동차(BAIC)의 소형 해치백 EC180은 보조금을 받아 7,100달러 수준에서 구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2만1,300달러를 부담해야 한다. 가격이 단숨에 세 배 가량 뛴 셈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국내에도 미국의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의 투자처로 알 알려진 중국 최대 전기차 회사 BYD(비야디)는 지난 7월 중국 정부의 친환경차 보조금 삭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전기차 개발에 주력하기 위해 가솔린 제품의 신규 도입을 중단한 상황에서 보조금이 줄자 전기차 판매도 전월 대비 17% 감소했다.
이런 조치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전기차의 천국으로 평가받는 중국조차 더이상 보조금으로 전기차를 늘리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아가 보조금을 이익으로 전환, 흡수하는 기업들의 수익 추구에도 제동을 걸겠다는 메시지다. 그간 중국 토종 기업들은 전기차의 정부 보조금을 이익으로 흡수하되 기술 개발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정부는 올해 전체 신차 판매가 2,668만대로 전년 대비 5% 줄고, 이 중 친환경차 판매 또한 150만대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토종 전기차 기업들의 위기가 감지되자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중국 내 합자기업들이다. 보조금 축소 및 중단을 기회 삼아 거리 기준을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삼으려는 행보가 돋보이고 있어서다.
포드는 중국 내에서 도심 소비자를 겨냥해 1회 충전 거리가 360㎞에 달하는 준중형 SUV BEV 출시했고, GM은 미국과 중국을 겨냥해 최장 644㎞ 주행이 가능한 대형 전기 SUV 캐딜락을 개발 중이다. 폭스바겐 또한 2020년 하반기 유럽에 내놓을 500㎞ 주행의 준중형 전기 SUV를 중국에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벤츠 또한 당장은 유럽용으로 개발 중인 405㎞의 대형 승용밴 전기차의 중국 진출을 타진 중이다. 고밀도 배터리의 강점을 앞세워 중국 내 전기차 보조금 수요를 적극 활용하는 셈이다. 하지만 점차 중국 정부 또한 점진적인 보조금 축소를 내비치고 있어 그만큼 전기차 수요가 확대될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비단 이런 상황은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한국도 배터리 전기차의 구매가 기대만큼 늘지 않아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월보와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내 BEV의 판매는 1만9,521대에 머물렀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3,764대와 비교하면 5,500대 가량 늘었지만 올해 정부 보급 목표가 3만3,000대인 점을 감안하면 도달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68.8%에 비해 낮은 59.2% 수준이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미래사회공학부 박재용 교수는 "충전 인프라가 많이 확충되고 1회 주행거리가 늘어났음에도 쉽사리 확장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보조금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이 무한정 지속될 수도 없다. 더군다나 내년부터 정부는 국내 전기차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늘릴 방침이다. 현재 보급 촉진 차원에서 ㎾당 173원을 받는 개방형 급속충전기의 충전요금을 ㎾당 313원으로 환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행거리 확대에 따른 전기차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제조사도 고민이 적지 않다.
그래서 차라리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순수 전기차에 집중된 보조금을 분산시켜 다양한 동력을 활용하자는 목소리다. 내연기관이라도 탄소 배출이 적거나 전기동력을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등을 빨리 확산하는 게 미세먼지 저감에는 보다 효과적이라고 말이다. 원가 경쟁력이 아직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보조금만으로 순수 전기차를 늘리는 게 정답이 될 수 있느냐고 되묻는 셈이다.
권용주 편집위원(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 [하이빔]한국차, 하이브리드 부품 경쟁력 키워야
▶ [하이빔]재도약 추진하는 BMW, 핵심은 '신뢰'
▶ [하이빔]수입차 된 쉐보레의 남은 과제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