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시도 때도 없는 휴가 중 연락 철통방어 노하우

입력 2019-09-02 17:12   수정 2019-09-03 02:35

푸른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해변가. 막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시원한 바다로 뛰어들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직장 상사에게 전화가 온다면?

지난달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96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은 ‘휴가 중 업무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는다’고 답했다. 직장인들에게 휴가 기간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아직은 꿈 같은 얘기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란 정해진 업무시간 외에 업무와 관련된 전화, 메시지, 이메일 등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정보통신기기가 발달하면서 근로자의 휴식시간과 사생활이 방해받는 문제가 발생하자 새롭게 등장했다. 프랑스, 독일 등 일부 선진국은 이를 법률에 명시해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같은 조사에서 휴가 기간에 업무 관련 연락을 받은 적이 있는 직장인은 2명 중 1명꼴이었다.

일과 휴식이 확실하게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 열심히 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직장인들이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고 입을 모아 강조하는 이유다. 모든 사물이 서로 바쁘게 연결되는 초연결시대에 업무 걱정 없는 즐거운 휴가를 사수하기 위한 직장인들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휴가 중’ 적극 알리기

휴가를 앞둔 직장인에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동료들이 내가 휴가 간 줄 모르는 것’이다. 휴가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 업무 연락은 가급적 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카카오톡의 프로필 기능은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휴가 알림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건설사에 다니는 오 대리는 휴가 가기 전 카톡 프로필 사진부터 바꾼다. 새빨간 배경에 흰색 글씨로 ‘휴가’라고 적힌 사진이다. 상태메시지에는 ‘휴가 중 연락이 어렵습니다’고 적는다. 오 대리는 “최대한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휴가 중임을 알려야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며 “이렇게 대놓고 알리면 단체 카톡방 알람은 울려도 개인적으로 오는 메시지는 확실히 줄어든다”고 말했다.

카톡 프로필을 바꾸는 것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도 많다. 석유화학업체에 다니는 황 대리는 “프로필 사진도 바꾸고 상태메시지에 휴가 일정을 적어놔도 업무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꼭 있다”며 “휴가철에는 전화하기 전에 상대방 카톡 프로필부터 확인하는 문화가 어서 빨리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휴가 한 달 전부터 거래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휴가 일정과 계획을 자체 홍보하고 있다.

스마트폰 알람 ‘OFF’

다른 사람이 연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 스마트폰 알람은 막을 수 있다. 사내 단톡방에 한해 카톡 알람을 꺼놓는 ‘일시적 검열제’를 시행하는 직장인이 많아지는 이유다. 세종시의 한 공기업에 다니는 채 대리는 휴가를 떠나기 전 스마트폰 알람 설정을 ‘휴가 맞춤형’으로 전환한다. 평상시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회사 사람이나 사내 단톡방의 알람음, 미수신 메시지 수를 보여주는 팝업 알람을 모두 해제한다. 이렇게 하면 메시지가 수십 통이 와도 휴대폰은 죽은 듯 조용하다. 채 대리는 “미수신 메시지를 알리는 숫자가 뜨면 괜히 신경이 쓰여 스마트폰을 보게 된다”며 “업무와 관련된 메시지가 보이면 의무감에 답하려고 한 적이 많아 아예 알람을 모두 꺼버리는 게 속이 편하다”고 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직장인이라면 휴대폰 유심을 바꿔 끼우는 방법도 유용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차 대리는 해외여행을 갈 때 유심을 교체해 회사로부터 깔끔하게 해방된다. 유심을 바꾸면 기존 번호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이나 문자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 회사에는 급한 일이 생기면 메일을 보내라고 사전에 얘기해둔다. 메일은 유심을 바꿔도 확인할 수 있다. 차 대리는 “휴가지에 있는 사람에게 메일까지 보내면서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휴가를 떠나기 전 회사에 이 정도만 말해둬도 여유로운 휴가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업무 연락을 원천 차단하고 싶은 직장인들은 휴대폰을 두 대 마련한다. 하나는 개인용, 하나는 업무용이다. 서울의 한 전자제품 제조업체에 다니는 강 대리의 업무용 휴대폰에는 직장 동료와 거래처 번호만 저장돼 있다. 개인용 휴대폰에는 제일 친한 동기 두 명과 후배 한 명을 제외하고는 회사 사람들 연락처가 없다. 강 대리는 휴가 기간에 업무용 휴대폰 전원은 꺼놓고 개인용 휴대폰만 들고 다닌다. 그는 “휴가 중에는 메시지를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 있는 것만 봐도 스트레스였다”며 “알뜰 통신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통신비 부담도 크지 않다”고 했다.

‘푹 쉬어라’ 단톡방 강퇴당하기도

업무 연락으로 휴가를 망친 경험이 있는 직장인들은 때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한다. 교육업체에 다니는 김 주임은 지난 여름휴가 때 국내에 머물렀지만 미국 여행을 떠났다고 회사에 알렸다. 김 주임은 “지난해 시차가 없는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바람에 거기서도 업무를 처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이번에는 시간대가 반대인 미국으로 떠난다고 알린 뒤 스마트폰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휴가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인식이 낮은 탓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제약업체에 다니는 김 과장은 휴가 때 국내에 있었지만 해외에 머무르는 척하기 위해 해외로밍 통화연결음을 컬러링으로 해놓기도 했다. 김 과장은 “아무래도 해외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연락을 더 꺼리는 것 같다”면서도 “어쨌든 사람을 속이는 것이니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몇몇 회사에서는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의 한 출판사에 다니는 서 대리는 지난달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에 부서 단톡방에서 강퇴당했다. “휴가자는 무조건 푹 쉬어야 한다”는 팀장의 원칙 덕분이었다. 서 대리는 “지금까지 휴가 중에도 회사 연락을 수시로 받았던지라 ‘괜히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단톡방을 나오니 마음 놓고 쉴 수 있었다”며 “이런 문화는 위에서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가 때 단톡방을 나가면 복귀한 뒤 업무 파악이 힘들다는 이유로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김 차장은 “업무에는 연속성이 있는데 단톡방을 나가버리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헤맬 수 있다”며 “휴가 마지막 날에 단톡방을 열어 한번에 확인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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