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성장 가도에 들어서자 서기만 대표(54)의 ‘공격본능’이 살아났다. 다소 생뚱맞게 2인승 경량항공기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량항공기 시장에 국내 중소기업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다. 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회사를 한쪽 방향으로만 키우는 게 더 큰 리스크라고 판단했다. 4년간의 연구 끝에 2017년 말 ‘KLA(Korea Light Aircraft) 100’의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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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성공비결
서 대표는 맨손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의 국산화를 이뤘다. 경량항공기도 제조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영업맨으로 쌓은 노하우와 신뢰 덕분이다. 서 대표는 “베셀은 영어단어(vessel)로 ‘대형 선박’ ‘큰 그릇’을 뜻한다”며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재를 모아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7남매 중 장남인 서 대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3년 부친이 작고했다. 집안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을 느꼈다.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입대(육군 9사단 백마부대)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군대에서 배운 교훈이다. 창업한 뒤 경영방침을 ‘할 수 있다(We make it possible)’로 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대 후 잠시 보석 관련 사업을 했다. 수익이 꽤 짭짤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뒤늦게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일본전자대 전자공학과에서 로봇을 전공했다. 당시 인공지능(AI)과 관련된 로봇 소프트웨어는 한국에선 낯선 분야였다. 만학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1993년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장남인 그는 당시 심부전증 등 지병이 있던 모친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 일본통이라는 이점을 살려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삼성 LG 등 대기업이 반도체 사업에 막 뛰어들 때였다. 반도체 관련 장비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중소기업에서 수입 업무를 맡았다. 1996년 디스플레이 장비업체로 이직해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100억원짜리 장비 계약을 따냈다. 영업과 CS(고객만족) 직원 5명으로 팀도 꾸렸다. 서 대표는 “회사를 나가기 1년 전부터 경영진이 만류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창업을 향한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
서 대표는 ‘한국 기술로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2004년 6월 베셀을 설립했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에 나섰다. 서 대표와 거래했던 일본 업체들이 도와줬다. 서 대표가 국내 대기업(수요자)과 새 장비를 납품해야 하는 일본 업체(공급자)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가량을 고생한 뒤 공장을 짓고 디스플레이 장비를 생산하게 됐다. 대표장비인 인라인시스템은 각각의 공정장비를 자동 생산라인으로 연결해주는 설비다. 시스템당 50억~100억원에 달하는 고가다. 고객 맞춤형으로 제작하다 보니 제품 수주에서 납품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
서 대표는 경쟁이 치열한 국내 시장 대신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중국은 디스플레이 시장이 한창 커지고 있었다. 6~7개월 문전박대 끝에 BOE·CSOT·티안마·CC판다 등 4대 메이저 회사와 모두 납품 관계를 맺었다. 서 대표는 “신뢰가 쌓이면서 중국 업체들이 믿고 맡기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베셀은 지난해까지 꾸준한 외형 성장과 함께 순항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걱정이다. 서 대표는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튀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와 금융권에서 기업에 자금을 풀지 않아 투자가 막히면서 협력사의 제품 납품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경량항공기 사업 도전
2013년 코넥스에 등록할 때 주변에서 축하의 말이 쏟아졌다. 2015년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하지만 서 대표는 안주하지 않았다. 당시 비행기 관련 방산업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유일했다. 비행기를 설계·제조하는 민간업체는 없었다. 마침 그해 말 국토교통부가 공고한 ‘경항공기 국책사업’ 개발업체로 선정됐다. 수입자동차와 비슷한 가격(2억원대)의 2인승 경량비행기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2014년 항공사업부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고, 2016년 11월 경항공기 KLA 100을 출시했다. 2017년 초 충남 천안공장을 짓고 그해 7월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KLA 100에 대한 안전성 인증도 획득했다. 국토부와 협의해 내년 초 경기 화성시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내년 가을께 양산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최근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의 ‘무인항공기 기반 해양안전 및 불법어업·수산생태계 관리 기술개발’ 사업의 총괄연구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프로젝트를 사업화하겠다는 것이 서 대표의 구상이다.
서 대표는 “노력과 모험이 없으면 기업은 성장하기 어렵다”며 “디스플레이 장비는 물론 경량항공기 무인항공기 등 작지만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분야를 파고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직원 행복이 회사 발전의 원동력”
이 회사 1층에 직원 전용 커피숍이 있다. 이곳에 캐리커처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지난해 회사에 기여한 주요 임직원의 얼굴이다. 인재를 아끼는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근로자와 성과를 공유하는 기업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존경받는 기업인’을 선정해오고 있다. 서 대표는 2016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미래를 이끌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선정됐다. 서 대표는 경영실적에 따라 기본급의 50~250%를 매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서 대표는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도 잘 운영된다”며 회사의 존재 이유가 직원과 함께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서기만 대표 프로필
△1965년 서울 출생
△1993년 일본전자대 전자공학과 졸업
△1993~2004년 동서하이테크, 제우스 근무
△2004년 베셀 설립
△2013~2015년 제2대 코넥스협회 수석부회장
△2015년 12월 5000만달러 수출 달성
△2016년~ 제12대 경기벤처기업협회장 겸 전국벤처기업협회장
△2018년~ 수원시 세정협의회 위원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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