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 근무를 한 근로자들이 받는 50%의 할증액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금액이다. 따라서 통상임금은 사전에 정해져 있어야 한다. 이는 기본급과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통상임금이 실제 얼마인지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기업 임금체계가 기본급 비중이 낮은 대신 직책수당 자격수당 등 각종 수당으로 복잡하게 이뤄진 탓이다. 어떤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될지 판단하려면 지급 조건, 지급률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가족수당도 가족 수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지면 통상임금이 아니다. 가족 수와 무관하게 일정 금액이 지급되면 사실상 근로의 대가로 봐서 통상임금에 포함시킨다. 명확한 판단 기준은 법률에 나와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관 업무에 참고하라고 내놓은 ‘통상임금산정지침’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수의 임금 관련 분쟁은 법원으로 간다.
통상임금을 산업현장의 화약고로 만든 것은 2013년 갑을오토텍 판결이다. 그전까지는 1개월을 초과해 지급되는 상여금은 고용부 지침에 따라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대법원은 당시 “상여금이 2~3개월에 한 번 지급돼도 정기적으로 일정한 금액이 지급되면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지면서 산업현장은 발칵 뒤집혔다.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포함한 법정수당도 덩달아 늘어나기 때문이다. 법률상 덜 받은 임금은 과거 3년치까지 소급해 받을 수 있다는 소멸시효 규정도 고려한 대기업의 노조 다수가 법원에 소송을 냈다. 고용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체 192곳이 송사에 휘말렸다.
법원으로 달려가는 통상임금 분쟁
소송금액도 적지 않다. 재계는 2017년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던 25개 대기업이 모두 패소하면 추가인건비 부담이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통상임금 소송 패소로 일시에 거액의 인건비를 부담해야 하는 기업은 경영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대법원이 2013년 판결에서 통상임금 소송으로 기업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운 경우는 신의칙에 따라 근로자들의 청구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단서를 덧붙인 이유다. 그러자 이번엔 신의칙 적용 여부를 놓고 산업현장에서 통상임금 소송 대란 2라운드가 벌어졌다.
기업으로서는 한 가닥 희망이 신의칙이었다. 하지만 올 2월, 4월 잇달아 나온 시영운수와 한진중공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신의칙 적용 가능성을 사실상 없앴다. 법정관리 중인 한진중공업도 신의칙 적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에 계류된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만도, 기아자동차, 금호타이어 등의 기업도 신의칙 적용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매각 논의 중인 아시아나항공과 경영난을 겪는 조선업체도 마찬가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상임금 혼란의 3라운드도 바로 뒤따른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세아베스틸 판결 때문이다. 서울고법은 “상여금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도록 규정한 재직자 요건 자체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따라서 상여금 지급일 전에 퇴직한 사람도 근무일수에 비례해 상여금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도 해당한다.
많은 노동법 전문가는 이 판결 직후 우려를 나타냈다. 산업현장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아서다. 사실상 정기상여금은 모두 통상임금이 되는 만큼 기업은 임금의 유연성이 떨어지게 돼 상여금 일부를 축소하고 나설 가능성도 예상된다. 그럴 경우 근로자는 소득이 줄어든다. 회사와 근로자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서는 소송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복지포인트는 제외" 판결 났는데
이뿐만 아니다. 대법원이 최근 내놓은 복지포인트 관련 판결에서 보듯 복잡한 명칭의 각종 수당과 인센티브를 놓고 통상임금 분쟁 4,5라운드가 예고돼 있다.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결과 주어지는 경영성과급도 그중 하나다. 대법원은 지난해 한국감정원, 한국공항공사 등 공공기관의 경영성과급도 지급 실태 및 조건을 볼 때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고 판결했다. 이전까지 ‘기업 이윤에 따라 일시적·불확정적으로 사용자의 재량이나 호의에 의해 지급하는 경영성과배분금, 격려금, 생산장려금, 인센티브 등’은 임금에서 제외했던 고용부 지침을 뒤집은 것이다. 파장은 민간기업에까지 확산할 전망이다. 최근 일부 대기업 퇴직자가 초과이익분배금(PS)과 생산성격려금(PI)을 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눈길을 끄는 판례가 나왔다. 서울의료원 사건이다. 통상임금 인정 범위가 계속 확대되는 법원 판결 추세와 반대 방향이다. 공공기관이 선택적 복리후생 프로그램으로 지급하는 복지포인트도 일률적으로 전 직원에게 돌아가는 만큼 통상임금이라고 1, 2심은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8 대 4로 이를 뒤집었다. 복지포인트의 사용 용도가 제한돼 있고 새로운 복지체계의 하나로 도입된 만큼 임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제시한 대법관도 4명이나 된다. 통상임금 범위가 당분간 계속 확대될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금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는 근본 이유는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강한 노동법 규제도 한몫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초과근로 할증률은 50%로 일본의 25~35%, 프랑스의 25%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장시간 근로와 임금 분쟁을 오히려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과도한 규제가 혼란 부추겨
법원의 오락가락 판결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재판은 판결의 대상이 되는 사건에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2013년 판결 때 보도자료까지 내고 통상임금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법원이 개별 분쟁의 해결에서 벗어나 산업현장의 노사관계 판까지 흔든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노동의 사법화”라고 표현했다.
기업과 근로자 사이에 갈등과 분쟁을 오히려 키우는 법원도 문제지만, 2013년 이후 6년이 지나도록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법 개정도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 국회도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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