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시아나항공 매각 흥행의 조건

입력 2019-09-04 17:48   수정 2019-09-05 00:10

아시아나항공 인수 경쟁이 시작됐다. 지난 3일 마감된 예비입찰에 애경그룹, 미래에셋대우·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 사모펀드 KCGI(강성부 펀드) 등 다섯 곳이 응했다. 당초 유력한 인수후보로 언급되던 대기업이 모두 빠져 흥행이 우려되지만 일단 인수전에는 불이 붙은 상황이다. 다음주에 인수후보군이 선정되면 실사를 거쳐 본입찰이 진행된다. 인수후보자를 많이 불러들이고 경쟁을 부추겨 넉넉히 매각대금을 챙기려는 금호산업은 여전히 초조하다. 연말까지 매각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주도권이 채권자인 산업은행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1989년 첫 비행기를 띄운 이후 줄곧 성장세를 이어왔다. 매력 있는 제2 국적 항공사의 인수 경쟁이 예상보다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항공업황이 밝지 않은 게 문제다. 매출은 늘고 있지만 공급 경쟁으로 영업마진이 줄고,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약 2조원에 달하는 인수금과 7조원으로 추정되는 부채가 인수자 측에는 부담이다. 최근 일본 여행 보이콧과 중국의 신규 증편 규제, 환율과 유가 상승도 인수자의 결심을 망설이게 한다. 외부 리스크에 취약한 글로벌 서비스산업의 영업 특성이 걸림돌인 셈이다. 그동안 양호하던 영업이익까지 올 들어 적자로 바뀌면서 악화된 수익성과 재무구조도 매수자가 당장 해결해야 할 난제다.

한편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를 쪼개서 파는 대안도 거론된다. 분리매각은 그룹 내에서 공유되는 운항과 정비, 마케팅과 노선 운영의 시스템을 해체해 사업단위로 매각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사실상의 빚잔치다. 그룹 해체로 시너지가 소멸되면 아시아나항공과 6개 자회사의 기업가치는 하락하고 시장 지위는 약화된다. 대한항공과 복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장거리 노선에서는 항공업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파는 쪽이나 국가적으로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정부가 모두 일괄매각을 희망하는 이유다.

시장에 나온 매물은 인수후보자가 많을수록 가격이 오르고, 경쟁이 시들할수록 제값 받기가 어려워진다. 수요자와 공급자 간 협상력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다. 지금부터 인수후보자들의 관심을 끌어 빅딜을 성공시킬 조건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인수 조건을 지금보다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매각자인 금호산업과 산은이 구주의 매각과 증자를 위한 신주발행 조건부터 합의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해야 인수자 측의 계산도 빨라지고 정확해진다. 기업 가치에다 프리미엄을 얹으려는 금호산업과 시간적으로 느긋한 산은 간의 협상이 늘어질수록 아시아나의 경영부실은 더 심각해진다. 매각이 늦어질수록 비수익 노선 축소로 고객의 편익은 줄어들고 항공 안전도 위협받는다.

둘째,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유·무형 자산의 이전을 인수자에게 담보하는 조건도 필요하다. 매각 과정에서 운수권과 노선의 회수 같은 조치가 없도록 정부가 보증하는 것이다. 인수자는 전략적 의사결정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경쟁력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선 구조와 마케팅 보완을 통한 시너지 효과로 외국 항공업계에서 인수합병(M&A)이 늘 흥행하는 이유다.

셋째, 항공운송업의 재무적 특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상품의 생산·판매는 제조업의 현금흐름과 달리 유동성이 높다. 금융업과 건설업처럼 신용평가에서 부채비율의 적정 기준을 달리 적용해야 인수와 동시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승자의 저주를 줄일 수 있다. 아메리칸, 델타, 유나이티드 같은 ‘빅3’ 항공사들도 부채비율이 300%를 넘는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국내 항공업계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영 능력을 갖춘 인수자의 등장으로 항공여행객들의 편익이 향상되고 업계의 경쟁력도 강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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