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장인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주제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주 5일 근무는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고, 가족친화경영과 주 52시간 근로제를 넘어 직장 내의 괴롭힘 방지법까지 등장했다. 이 정도면 직장생활도 제법 할 만할 것 같다는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는 점은 분명하지만 진정한 일과 삶의 균형이 이뤄지는 ‘저녁이 있는 삶’으로 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지금은 강제적인 제도와 회사가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 기업과 직원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이슈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먼저 기업문화와 시스템적인 측면을 짚어보자. 첫째, 리더들의 솔선수범이다. 리더가 먼저 퇴근하고 휴가를 많이 가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리더가 왜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지를 직원들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
둘째, 계획적으로 운영되는 비즈니스 사이클과 게임의 법칙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비즈니스의 세계이기에 계획이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돌아가는 비즈니스 계획이 있어야 한다. 최대한 그 틀 안에서 운영함으로써 직원들이 일하는 데 예측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적절한 휴식과 업무성과 간의 긍정적인 상관관계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독일 기업의 한국 법인에서 일할 때 독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화요일 오전부터 시작하는 출장 일정인데 월요일에 출발해 당일 저녁에 도착하는 여정을 잡은 내게 사장은 “시차를 극복하고 화요일 오전부터 정상적 업무 진행이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진정한 저녁이 있는 삶은 단순하게 인사부가 몇 가지 프로그램을 잘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스스로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좋은 습관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훈련하고 습관을 고쳐야 한다. 제도가 바뀐다고 삶의 질이 좋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직원 삶의 질 및 패턴도 같이 바뀔 때 진짜 변화가 일어난다.
시대와 경영 환경이 바뀌면서 기업·조직·임직원 간 역학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기업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던 과거와 달리 노동 시장의 다양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쟁 우위를 가지려면 인재의 활용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이 행복해지고 집중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부분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직원 역시 100세 시대와 평생 직업을 찾아야 하는 이 시대에 무관심했던 삶의 주도권에 대한 애정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단지 근로시간만 단축된 게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과 개인 삶의 질 향상이 동반된 진정한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가길 바란다.
한준기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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