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삶의 질을 높이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된다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근 30% 올리고 근로시간은 25% 줄였다. ‘칼퇴근’이 일상이 되고 남성 육아휴직도 공무원·교사를 제외하고는 30% 이상 증가했다. 고용은 그만큼 악화됐다. 소득과 재산에 관계없이 아동수당을 확대했고, 어린이집 무상보육으로 전액을 국고 지원했다.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한다며 국공립유치원 비율을 40%로 확대한다고 한다. 출산율을 높인다고 이렇게 퍼부은 돈이 150조원을 훌쩍 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출산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다.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할 수 있는지,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닐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시장이 유연하고 이민 문호가 넓을수록 출산율이 높다. 이 때문에 선진국이라도 미국(2.1), 북부 유럽(1.8)은 높은 반면 그리스 등 남부 유럽(1.3)은 유럽 평균(1.6)보다 낮다. 세계에서 행복지수와 남녀평등지수가 가장 높다는 핀란드의 출산율이 1.4로 격감해 충격을 줬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고용이 악화됐기 때문인데, 이민자 수용에 적극적인 스웨덴을 제외한 다른 북부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출산율은 경기와 고용의 선행지표라고 할 정도로 관계가 밀접하다. 고용정책은 출산율 제고에 핵심 수단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험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직업훈련, 고용안정 서비스 등 출산 후 재취업에 도움을 주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등 고용 관행 유연화를 통한 일·가정 양립 정책은 출산율 제고에 기여했다. 반면 채용과 해고 규제 등 고용보호법 강화는 출산 후 직장 복귀는 물론 전직·전업의 기회를 막기 때문에 출산율을 높이는 데 장애가 됐다.
한국에는 아직도 복지를 늘리면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정말 그럴까? 놀랍게도 이에 관한 OECD 경험은 그렇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이 크다고 출산율이 높지는 않다. 복지 확대는 이혼율을 높이는 효과가 가장 컸고, 그다음으로 결혼율을 높이는 효과가 컸으며 출산율 올리는 효과는 미미했다. 그나마 출산율 제고도 동거 등 결혼하지 않은 가구에 집중됐다. 복지 확대가 가족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출산율 제고엔 효과가 작은 이유는 노동 이동을 어렵게 하는 고용 관행의 경직성에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 없이 복지 지출만 늘리면 재정 위기와 고용 불안을 야기해 출산율을 떨어뜨린다. 한국처럼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그리스 등 남부 유럽이 그렇다. 이 같은 노동시장 이중 구조는 복지 양극화를 만들 뿐 아니라 정규직 과보호 때문에 여성의 경력단절을 심화시킨다. 30~40대 여성의 고용률을 보면 남부 유럽은 한국(65%)처럼 낮고 그리스는 52%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스웨덴은 90%, 독일·프랑스·북부 유럽은 80% 후반, 미국·일본은 70%대 후반이다.
정책은 과학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노동계·시민단체의 요구를 모은 수준이다. 삶의 질을 높인다는 소득주도성장과 전면적 무상복지가 그렇다 보니 출산율은 떨어지고 불법체류 외국인만 늘어 실패로 돌아갔다. 외국은 물론 역대 정부의 경험을 교훈 삼아야 한다.
통계는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일·가정 양립 정책과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출산율을 반등시킨 반면 노무현 정부의 보육 등 복지 중심 출산장려 정책은 그렇지 못했다. 보편적 복지의 유혹을 이기고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출산율 0명대 정권’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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