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 궁극적으로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을 지지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시장경제국’이 아니었기에 엄격히 말하면 WTO 가입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너무나 낭만적인 ‘차이나 드림’을 가졌다. 가난한 중국을 세계 자유무역체제에 넣어주면 미국 상품이 인구 십수억 명의 거대한 시장에 흘러들어가고 소련에 이어 중국도 탈(脫)공산화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WTO 가입 전인 2000년 1조2113억달러였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5년엔 11조7억달러로 무려 10배 증가했다. 이는 미국이 너그럽게 시장을 개방해 중국의 수출이 같은 기간 2492억달러에서 2조3428억달러로 10배 늘어난 덕분이다. 같은 기간 군사비 지출도 229억달러에서 2096억달러로 거의 10배 증가해 명실상부한 세계 2위 군사대국이 됐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2017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몽(中國夢)’으로 미국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2등 국가에 만족하지 않고 2050년까지 세계 1위의 경제·군사대국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워싱턴의 ‘차이나 드림’이 베이징의 도전적인 ‘중국몽’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그동안 두 나라는 완전히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한 셈이다.
중국의 거친 군사적 도전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중국이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듯이 역사적으로 1등 국가가 패권(hegemony)을 순순히 내준 적은 없다. 미국을 가장 위협하는 중국의 군사적 도전은 ‘해양굴기’다. 중국이 아무리 육군을 증강하더라도 이는 동아시아에 머문다. 하지만 해군은 다르다. 19세기 영국의 군사비 지출은 러시아, 프랑스에 이은 3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압도적 해군력이 대영제국의 세계 지배를 뒷받침했다.
막강한 옛 소련도 태평양에서 감히 미국에 도전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중국은 항공모함 전단(戰團)을 여섯 개나 만들어 미국과 태평양을 양분하자고 나선 것이다. 양순한 판다 곰인 줄 알고 WTO에 가입시켰는데 막대한 대미 흑자로 번 돈으로 공격용 항모를 만들어 미국에 달려드는 사나운 호랑이가 된 것이다.
베트남, 필리핀 등과의 영토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 무단으로 건설한 중국의 11개 인공 군사기지에 ‘항행의 자유’를 주장하는 미 함정이 접근하면 그 반응은 아주 거칠다. 중국 군함이 충돌 직전인 40여m까지 미 구축함에 접근한다.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즉 전쟁도 불사한다”는 호전적 발언들이 베이징에서 마구 튀어나온다. “‘항모 킬러’인 둥펑 21-D 미사일로 미국 항모를 충분히 격침할 수 있다. 항모 두 척만 격침하면 두려움에 떠는 미국을 보게 될 것이다.” 중국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의 한 예비역 장군의 호언장담이다.(타이베이 중앙통신사 CNA, 2018년 12월)
이것은 정말 위험한 오만과 환상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자가 미국을 이렇게 우습게 보고 진주만을 기습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맥아더 장군을 패퇴시키고 승승장구할 때 “미군은 중국군보다 약하다”는 전투 교범을 일선 병사들에게 나눠줬다.
세계 전쟁사를 돌아 볼 때 2등 국가가 막무가내로 패권에 도전하면 군사적 충돌은 불가피하다. 미·중 두 나라가 격돌할 가능성이 제일 큰 곳이 남중국해다.
중국이 군사적 도발을 할 때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먼저 미국이 무자비할 정도로 철저히 응징하는 것이다. 중국이 불법적으로 구축한 인공군사기지의 비행장과 시설을 정밀타격해 쓸어버리는 것이다. 조지프 S 나이는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2015)란 책에서 ‘하이테크 무기에선 10 대 1 수준으로 앞선 전투력으로 거의 짝퉁 수준인 중국의 함정, 전투기에 본때를 보여 준다’라고 썼다.
미국의 군사력으론 가능하다. 하지만 국제정치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워 미국이 선택하기 힘든 시나리오다. 그래서 미국이 방어적으로 미지근하게 대응하면 베이징은 분명 대미 항전의 승리로 포장하고 패권국가로 더욱 치달을 것이다. 6·25전쟁도 미국에 승리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으로 미화하는 그런 나라이니,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中, 패권국가 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
가장 간단한 방법은 허황된 군사패권을 꿈꾸는 중국을 옛 소련식으로 몰락시키는 것이다. 냉전시대 국민총생산(GNP)의 30%가 넘는 돈을 미국과의 군비경쟁에 쏟아붓던 소련은 경제 파탄으로 자멸해 버렸다. 한국 국방예산의 3~4배를 투입해야 하는 중국의 6개 항모전단을 미사일이 아니라 돈줄을 막아 바다의 고철로 만드는 것이다. 중국엔 결정적 아킬레스건이 있기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군비 확장에 퍼붓는 달러의 상당 부분이 따지고 보면 중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 그리고 6210억달러의 무역적자(2018년)를 감수하며 중국 물건을 사주는 미국 소비자 주머니에서 나온다. 바로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한창 중국을 후려치고 있다.
둘째,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기존의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는 방법이다. 단순한 관세, 환율, 기술 전쟁에서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의 철수 명령’까지 언급하고 있다. 과거 미국 기업의 해외 투자 패턴을 보면 아무리 기대 수익이 높아도 정치적 리스크가 큰 나라엔 투자하지 않는다. 이미 ‘차이나 리스크’가 임계점을 넘어 애플, 구글, 인텔 같은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셋째, 중국처럼 덩치만 커진다고 패권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조지프 나이가 지적하듯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소프트 파워, 즉 ‘보편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조지프 S 나이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2015). 대영제국의 민주주의, 미국의 자유 같은 것이다. 지금 중국이 내세우는 건 ‘위대한 중화사상’이다. 이건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자국우월주의에 불과하다.
넷째, 세계질서에서 우두머리가 되려면 따르는 무리, 즉 동맹국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70여 동맹국이 있다. 끊임없는 영토 팽창욕으로 국경을 접한 14개국과 모두 영토분쟁을 하는 중국에 동맹국은 딱 두 나라다. 파키스탄과 북한이다. 전혀 도움이 안되는 동맹국이다.
마지막으로 시 주석이 너무 일찍 칼을 빼들었다. 미국이 1870년대에 경제적으로 영국을 추월하고 70년 정도가 흐른 1940년대에 군사패권을 장악했다. 그런데 중국은 2050년에 경제, 군사 두 개의 패권을 한꺼번에 차지하겠다고 한다. 독일, 일본, 옛 소련 모두 다 중국처럼 너무 성급히 군사패권에 도전하다가 자멸했다.
우리의 선택은
중화제국의 그늘 아래 다시 들어가느냐, 아니면 한·미동맹인가.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미국이다. 우선 국가안보다. 군사몽(軍事夢)이 진짜 실현돼 미국을 중국 연안에 속하는 열도(일본 포함)에서 몰아내면 한국은 중국 해군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다. 그렇게 될 때 “코리아는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베이징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대할지는 짐작할 만하다.
다음으로 중국과의 역사전쟁이다. 청천강 이북은 자기 땅이라 생각하는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했다. 북한 돌발사태 시 조·중 우호 협력조약에 의해 중국군이 슬며시 압록강을 넘어와 고토(古土) 회복을 핑계로 청천강 이북에 주저앉으면 남중국해 짝이 난다. 이럴 때 중국을 밀어낼 유일한 힘은 한·미동맹이다.
지금 중국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룡처럼 비대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큰 나라와 기업이 작은 나라와 기업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는 빠른 놈이 느린 놈을 잡아먹는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민주화를 하지 않고 선진화에 성공한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특히 오늘날 같은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창조적 인적자본’을 많이 가진 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앞선다.
그런데 이 창조적 두뇌는 사회의 다양성에서 나오고 다양성은 민주사회에서만 싹이 튼다. 중국의 우수한 인력을 보면 공산당이 허용한 제한적 분야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잘한다. 그래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 그런데 이들은 정부 허용을 벗어난 다양하고 창조적인 분야에서는 갈팡질팡한다. 그래서 10억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도 우리의 방탄소년단이나 K팝같이 세계인이 열광하는 창조적 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은 거꾸로 표현하면 중화제국에 무릎 꿇지 않을 ‘미들 파워(middle power)’라 할 수 있다.
안세영 < 성균관대 특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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