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차원(3D) 스캐너 전문업체를 인수하기 위해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칼라일 등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대거 뛰어들었다. 매출이 300억원대인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6000억원 안팎으로 평가받고 있다.
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치과용 스캐너를 생산하는 메디트의 경영권 매각을 위해 지난 6일 실시된 예비입찰에 KKR, 칼라일을 비롯해 TA어소시에이츠,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등 글로벌 PEF 운용사 아홉 곳이 참여했다.
메디트는 장민호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메디트 대표·51·사진)가 2000년 설립한 벤처기업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운용자산이 수백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PEF들이 한국 벤처기업 인수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28억원, 영업이익은 103억원이었다. 그나마 매출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지난해부터다. 새 주력사업인 치과용 3D 스캐너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다. 그럼에도 글로벌 PEF들은 이 회사 가치를 6000억원가량으로 평가하고 앞다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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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빈 '아이언맨 마스크'에 기술 적용…메디트에 군침 흘리는 KKR·칼라일
치의료 산업에 첨단 IT 접목…매출 70%, 유럽·미국서 나와
장민호 메디트 대표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컴퓨터지원설계(CAD) 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며 3D(3차원) 스캐너를 연구했다. 국내 중소기업에 기술을 이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맺지 못했다. 그가 교수로 일하면서 직접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유다.
창업 당시엔 그의 전공 분야인 산업용 3D 스캐너가 주력이었다. 비행기와 자동차, 보석 등의 정밀 품질검사 분야에서 스캐닝 기술력을 인정받아 삼성, LG를 비롯해 보잉, 벤츠, 테슬라, 까르띠에, 티파니, 샤넬 등 세계적 기업을 고객사로 맞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인 윤성빈 선수가 착용한 마스크의 두상 설계에도 메디트의 스캐너가 사용됐다.
틀니와 같은 치과 보형물을 만들려면 환자들이 고무찰흙을 입에 물고 치료할 치아의 형상을 떠야 한다. 여기에 석고를 부어 틀을 제작하고 그 모양대로 보형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제조 과정이 번거롭고 제작 기간도 1주일 넘게 걸린다. 메디트의 구강용 3D 스캐너는 진동칫솔 모양의 스캐너로 입안을 1~2분 만에 스캐닝하고 1시간 만에 보형물을 완성한다. 의학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해 치과용 스캐너 분야에 혁신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디트라는 회사 이름도 메디컬과 IT의 합성어다.
이번 매각 대상은 장 대표와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메디트 지분 50% 이상이다. 메디트 지분은 장 대표와 프리미어파트너스·유경PSG자산운용 등 FI가 각각 80%와 20%를 나눠 갖고 있다. 매각주관사는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이 맡았다.
장 대표가 급성장하는 회사의 최대주주 지위를 내놓은 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전략과 자금을 지원할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서다. 인수 후보를 해외 업체로 제한한 이유다. 메디트의 매출 중 70% 이상은 유럽과 미국에서 나온다. 거래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새 인수자가 메디트의 최대주주가 되고, 장 대표는 2대주주 및 공동 경영자로 남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번 예비입찰에는 KKR, 칼라일, 어피너티 같은 유명 운용사 외에 지금껏 국내에 투자해본 경험이 없는 외국계 사모펀드(PEF)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제안서를 낸 TA어소시에이츠도 최근 밀크티 브랜드 공차를 인수하기 전까지는 국내 투자 경험이 전무했던 미국계 PEF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메디트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게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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