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자유주의자면서 사회주의자라고?

입력 2019-09-09 17:25   수정 2019-09-10 00:18

긍정도 부정도 않는 것을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한다. 외교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유효한 전략이다. 상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국익 관점에서 손해라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공직자 후보가 견지하는 소신과 철학은 분명하고 명료해야 한다.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과거 자신의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활동이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고 했다. 그가 ‘전향’을 단호히 거부하는 이유다. 전향이란 단어 자체에 ‘낙인(烙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왜 전향이 낙인인가. 그렇다면 ‘한 번 결정한 것은 무엇이든 옳다’는 말이 된다. 자기 교정능력이 없는 사회는 후퇴한다. 우리 사회는 연옥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바꾼 사람에게 낙인을 찍지 않았다.

사노맹 활동 당시 2심 판결문을 보면 사노맹 강령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그는 “사노맹 활동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전향한 것 아닌가. 헌법을 존중한다면서 전향하지 않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전략적 모호성을 넘어 기회주의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급기야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은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며, 이는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학자가 아닌 법무장관 후보자로서 청문회에 임했다. 그런데 자칭 자유주의자면서 사회주의자라는 사람을 공직에 임명할 이유는 없다. 법무장관의 역할은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관한 투철한 국가관을 가져야 한다.

그는 “헌법의 틀 안에서 사회주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제민주화와 토지공개념 등이 이론적으로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 부분 ‘사회주의 요소’를 반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사회주의 정책’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견제와 균형, 형평성 제고, 누진세제가 사회주의 정책일 수는 없다. 경제민주화와 토지공개념은 보조 개념일뿐더러 그 자체가 성공적인 정책도 아니다.

그는 자신을 “자유주의자이고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함으로써 ‘둥근 네모’류(類)의 형용모순을 범하고 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같은 평면에서 양립할 수 없다.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경제 자유를 허용하는 자유주의와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국가의 간섭과 설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주의에는 공통분모가 없다.

조국 장관이 자가당착에 빠진 것은 결국 전향을 거부해서다. 전향을 거부하니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고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 요소와 사회주의 정책은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맞다’고 하는 것은 억지다. 나이가 들면 남자에게도 여성호르몬이 미량 분비된다. 그렇다고 남성이 중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회는 이념과 가치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세력 균형은 자유주의와 반(反)자유주의 간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 사람이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조국 장관은 철 지난 사회주의를 붙들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1841~1931)은 1896년 출간한 <사회주의의 심리학>에서 “사회주의가 ‘핍박 없는 모두가 잘사는 평등사회’를 주창하지만, 사회 발전 원동력인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억압하기 때문에 결국 핍박과 빈곤을 낳을 뿐”이라고 역설했다. 르봉은 자유주의가 발달한 앵글로색슨족이 세계를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120년 전에 미국의 급부상을 예견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도 ‘국가 간섭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공공선’을 이유로 국가 역할을 확대할수록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민간부문의 자율성과 독창성은 위축된다. “국가가 최대의 고용주가 돼야 한다”고 주장할수록 40대 제조업 일자리는 파괴되고 세금으로 만든 사회적 일자리가 증가한다. 공권력을 비대하게 하는 사회주의는 루저(loser)다.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의 몰락이 이를 웅변한다. 조 장관에 대해서는 좌파·우파의 기준이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 ‘반칙과 공정’의 잣대를 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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