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교수는 이날 기획재정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공동 개최한 ‘2019 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콘퍼런스’ 기조연설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 주도의 교역 블록에 들어가기보다는 유럽연합(EU)과의 교역을 늘리는 등 글로벌 밸류체인을 계속 활용하는 게 낫다”며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밸류체인이란 상품 설계, 원재료와 부품 조달, 생산, 유통, 판매에 이르는 과정이 세계 각국에 걸쳐 이뤄지는 생산 방식을 말한다. 그는 “세계 교역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가장 많아졌다가 위기가 발생하면서 추락했고 지금은 정체 상태에 놓여 있다”며 “최근의 보호무역주의는 이른바 초세계화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는 정책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글로벌 공급망이 너무 복잡하고 길어지면서 물류 등에 문제가 발생했고 기업도 이런 점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그럼에도 글로벌 밸류체인이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공급망을 통한 인센티브를 (여러 나라가) 공유했기 때문에 이 같은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처럼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라도 드물다”며 “미국 중국뿐 아니라 EU 등과의 교역을 계속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중국발(發)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예견한 바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중국은 신용(채무) 확대를 통해 경제가 성장했는데 예전부터 이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며 “지금까지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 경기가 나빠지는 것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젠가는 정책 효과가 소진될 수 있다”며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하면 이것이 티핑포인트(평형을 깨뜨리는 지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부품·소재 국산화에 나선 것에 대해서는 “한국 입장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 같다”며 “일본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경기 하강) 초반부터 과감하고 즉각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기업들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안 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은 소비 지출을 늘려 경제에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다만 이 영향은 크지 않으며 오히려 공공지출을 늘리는 게 경기 부양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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