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성폭행' 안희정, 무죄→유죄→징역 3년6월 '유죄 확정'…성인지 감수성 뭐길래

입력 2019-09-09 10:49   수정 2019-09-0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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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상고심 판결에서 징역 3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9일 오전 10시 10분 대법원 1호법정에서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심은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피해자가 피고인을 무고할 목적 등으로 허위의 피해 사실을 지어내 진술했다거나 피고인을 무고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며 김씨의 피해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전임 수행비서의 진술에 대해서도 "전임 수행비서가 피고인에게 불리한 허위진술을 할 이유가 없다"며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에서는 피해자 김씨의 진술과 김씨로부터 피해사실을 전해 들었다는 안 전 지사의 전임 수행비서의 진술 등에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2심의 판단 결과가 뒤집힌 것은 1, 2심 재판부가 위력의 행사 여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등을 완전히 다르게 봤기 때문이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이 있었음은 인정했다. 성폭력 범죄에서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한다. 유형인지 무형인지는 관계없으므로 폭행·협박이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위력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위력이 개별 성범죄에 쓰였는지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은 있었지만, 평소 비서실 직원들에게 이런 위력을 구체적으로 내보이지 않았고 김씨가 피해를 호소한 각 사건에서도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위력을 행사해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야 범죄가 되는 것인데,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침해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1심은 "간음 사건 이후 피해자가 피고인과 동행해 와인바에 간 점과 지인과의 대화에서 피고인을 적극 지지하는 취지의 대화를 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인정했다.

전임 수행비서의 진술에 대해서도 "간음 사건 후 전임 수행비서에게 피해사실을 알렸다고 하지만 통화한 내역이 없는 등 피해 사실을 전해 들었다는 전임 수행비서의 진술도 믿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2심은 전임 수행비서 등이 안 전 지사는 표정이나 분위기로 상대에게 위압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타입이고 수행비서들은 안 전 지사가 원하는 것은 시급하게 그 요구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안 전 지사가 지시하면 경중을 떠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고 증언한 점을 인정했다.

수행비서들의 업무 패턴에 비춰보면 김씨가 맥주를 가지고 간 것은 업무였고, 김씨가 객실로 들어오자 수차례 설득한 것이나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젓는 김씨를 간음한 것은 위력을 행사한 것에 해당한다고 봤다. 수행비서 김씨가 권력적 상하관계에 놓여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등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힘든 상태에 있다는 걸 안 전 지사가 알았으면서 이를 이용했다고 본 것이다. 2심은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를 포옹한 것과 소극적 저항을 하는 피해자를 설득해 간음한 것은 안 전 지사가 적극적으로 위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성문제 관련 소송을 다루는 법원은 양성평등의 시각으로 사안을 보는 감수성을 잃지 말고 심리해야 한다는 이른바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판결이 이번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심은 성폭력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배려하는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면서 1심 판결은 이러한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잘못된 판결이라고 봤다.

김 씨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시점 직후에, 안 전지사의 식당을 예약하고, 장난 섞인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성폭력을 당한 뒤에도 개인이 처한 위치와 성향에 따라 충분히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이후, 성폭력 사건 판결에서 이런 성인지 감수성을 중시하는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뒤 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판결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추세다.

실제 이날 안 전 지사의 항소심에서도 재판부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대법원 판례를 거론했다. 안 전 지사의 1심 재판부도 ‘성인지 감수성’을 적용했지만 혐의 인정에는 이르지 않았다.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구조 속에서 남녀가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만큼 성별에 따른 차별을 인지하는 감수성을 뜻한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이 모두 맞다고 인정하면서 안 전 지사는 징역 3년 6개월형을 확정받게 됐다. 안 전 지사가 법정구속돼 있던 구속기간은 이 형기에서 제외한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러시아, 스위스, 서울 등에서 수행비서 김씨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4차례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와 함께 5차례에 걸쳐 김씨를 강제추행하고 1회 업무상 위력으로 추행한 혐의도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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