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엿새간의 일정을 끝으로 막 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9'의 화두는 단연 '스마트홈'과 초고화질 '8K TV'였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에 기반한 스마트홈은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생태계를 확장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홈 분야를 포함한 세계 가전시장 선두에 나란히 서 위용을 뽐냈다.
중국의 추격은 한층 거세졌다. 삼성과 LG가 8K TV 화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중국 업체들은 8K TV를 무더기로 출시하며 '기술 굴기'를 입증해 보였다. 일본도 IFA 2019 후원국으로 나서며 전자업계 재기를 알렸다. 유럽 안방에서 펼쳐진 한·중·일 삼국지가 내년 1월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전시회 'CES 2020'에서는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부터 관심이 고조된다.
◆ 너도나도 '스마트홈'…대세 굳혔다
'IFA 2019'는 '메세 베를린(Messe Berlin)'에서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엿새 일정으로 열렸다. IFA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와 함께 세계 3대 IT·가전 전시회로 꼽힌다. 올해는 전세계 52개국 1939개 기업·단체가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IFA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올해 역시 '스마트홈'이 차지했다. 최근 몇 년간 IFA에서는 AI와 IoT를 필두로 한 스마트홈이 집중 조명 받았다. 스마트홈은 TV와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각종 생활가전을 음성으로 제어할 수 있다.
개막 전 기대를 모았던 '스마트시티'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기업들은 도시로 확장된 스마트시티보다는 우선 스마트홈에 집중했다. 체험에 그치는 미래 기술보다 소비자들에게 곧바로 판매 가능한 제품들로 부스를 채웠다. 거실과 주방, 침실 등 모델하우스를 방불케 하는 스마트홈에 관람객은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스마트홈의 선두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섰다. 삼성전자는 올해 IFA에서도 참여 업체 중 가장 큰 부스(약 3050평)를 마련했다. 스마트홈 규모도 가장 컸다. 최신 빌트인 주방 가전으로 구성된 '미래 주방 존', 생활방식에 따라 홈 IoT 솔루션을 제시하는 '커넥티드 리빙 존' 등을 설치했다.
LG전자는 AI 가전 중심의 'LG 씽큐 홈'을 꾸렸다. LG 씽큐 홈은 △그레이트 리빙·키친 △홈오피스·홈시네마 △스타일링 룸·세탁라운지 등 실제 생활공간을 연출했다. AI 가전들로 주거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담는 데 초점을 맞췄다.
◆ 개막 기조연설 나선 화웨이…일본은 '후원'으로 맞서
중국 화웨이는 'IFA 2019'의 문을 열어젖혔다. 글로벌 유수의 기업들을 제치고 개막식 기조연설 주인공 자리를 꿰찬 것. 화웨이는 2017년부터 올해로 3년 연속 IFA 기조연설 무대에 섰지만 개막식 기조연설을 맡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 3년간 성장을 거듭한 화웨이의 저력과 국제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막 기조연설에 나선 화웨이의 리처드 위 모바일 부문 최고경영자(CEO)는 화웨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5세대(5G) 이동통신 스마트폰용 통합칩셋 '기린990'을 소개했다. 그는 "삼성, 애플, 퀄컴은 아직 이런 제품을 개발하지 못했다. 화웨이는 모바일 AI 생태계를 이끄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수적으로도 우세했다. 올해 IFA 참가 기업·단체 1900여개 중 40%인 780여개가 중국 업체였다. TV와 스마트폰 분야는 물론이고 냉장고와 세탁기 등 백색가전, 스마트홈에서도 약진하는 모습이었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에 한국 기업들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IFA에서 가장 먼저 가 볼 전시관으로 중국 TCL과 하이센스를 꼽았다. LG전자의 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H&A) 사업본부를 이끄는 송대현 사장 역시 중국의 하이얼을 먼저 둘러봤다.
일본은 스타트업 전시인 'IFA 넥스트' 후원국으로 나섰다. 경제산업성 고위 관료들이 공식 행사에 잇따라 참석하며 일본 기업들을 독려했다. 최근 전자업계 경쟁에서 뒤처진 감이 있었던 일본이 이번 IFA를 계기로 재기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 8K TV 둘러싼 한·중·일 삼국지…삼성·LG 공방 격화
올해 IFA에서는 한·중·일 세 나라가 초고화질 '8K TV'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뤘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싸움이 치열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의 8K TV를 겨냥해 전에 없던 맹공을 퍼부었다. "국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4K 수준의 TV를 8K TV로 판매해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8K TV에 대한 공식 기준은 없다. 1등을 헐뜯는 행위"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LG전자는 오는 17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이와 관련된 기자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8K TV 선두 업체 간 해상도 논쟁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업체들도 8K TV를 대거 선보이며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까지만 해도 중국 기업들은 8K TV 시제품을 선보이는 데 그쳤다. 8개월 만인 이번 IFA에서는 실제 판매 가능한 양산용 제품들을 대거 쏟아냈다.
TCL은 65·75·85인치 8K QLED(퀀텀닷 발광다이오드) TV를 공개했다. 8K TV에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결합한 모델도 선보였다. 하이얼 스카이워스 하이센스 콩카 등도 8K TV를 전시했다. TCL은 내년 초에, 하이얼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8K TV를 시장에 정식 판매할 계획이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작년 IFA에서 8K TV를 공개한 지 1년 만에 여러 중국 기업이 8K TV를 내놓았다. 중국 제품이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기술력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만은 확실하다"며 "이번 IFA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내년 1월 열릴 CES가 중국의 진짜 8K TV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베를린=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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