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석유산업 장악…요직에 최측근 배치

입력 2019-09-11 14:02   수정 2019-12-10 00:02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34·사진)가 석유산업에 측근들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석유왕국’으로 불리는 사우디에서는 석유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제1 왕위 계승자로 부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겸임한 실권자인 그가 국가 개혁을 앞세우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8일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를 신임 에너지 장관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에서 왕족이 에너지 장관에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는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 형이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는 1985년 석유부 장관 보좌관으로 공직에 입문해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석유부 차관보와 차관을 차례로 거쳤고 2017년부터는 에너지 담당 국무부 장관을 지냈다. 특히 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 사우디 대표단으로 자주 참석하며 석유 분야의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앞서 지난 2일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 회장이 교체됐다. 지난 수십 년간 에너지 장관이 겸직했던 자리를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야세르 알 루마이얀 사우디 국부펀드(PIF) 전무이사가 차지했다. 에너지 장관과 아람코 회장은 사우디 석유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84)의 총애를 받아 2017년 6월 삼촌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세제를 밀어내고 제1 왕위 계승자로 책봉됐다. 건국 이래 형제 승계를 원칙으로 해온 사우디 왕가에서 처음으로 부자 승계가 이뤄지게 됐다.

빈 살만 왕세자는 그간 반대파들을 가차없이 숙청하며 권력을 다져왔다. 왕세자 책봉 석 달여 만인 2017년 11월엔 반부패위원회를 결성하고 반대파 숙청에 나섰다. 왕실 내 왕권 경쟁자인 왕자 11명과 자신의 반대파 쪽에 선 전·현직 장관, 기업인 등 200여 명을 부패 혐의로 감금했다. 이 중 대부분은 빈 살만 왕세자에게 ‘충성 서약’을 한 뒤 거액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조건으로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엔 사우디 왕가를 비판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다. 하지만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사우디 대표로 참석하는 등 거리낌없는 공개 행보를 계속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경제개혁안 ‘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해왔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사우디 재정이 악화하자 국가 수입원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엔터테인먼트·정보기술(IT) 산업 위주로 신도시를 개발하고 로봇,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사업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다. 주요 사업 재원은 대부분 아람코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다.

이번 인사로 축출된 칼리드 알 팔리 전 에너지 장관 겸 아람코 회장은 아람코 IPO 등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알 팔리가 퇴진하면서 왕세자의 정책 추진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 분야 고위직을 자신의 심복들로 ‘물갈이’해온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산업까지 완전히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알 팔리는 수십 년간 에너지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혀왔지만 빈 살만 왕세자의 ‘이너서클’이 아니라는 약점이 컸다”고 보도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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