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만난 한 정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 회장은 전날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사견’을 전제로 두 은행의 합병 필요성을 언급했다. 겹치는 업무가 많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두 은행의 업무 중복 문제는 예전부터 거론돼 왔다. 2005년엔 김창록 당시 산은 총재가 국제투자금융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하자 수출입은행이 “업무영역 침해”라며 반발했다. 수은은 이듬해인 2006년 국정감사에서 “산은의 설립목적상 대외금융업무는 산은의 업무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15년 9~10월엔 ‘간접금융’으로 신경전을 벌였다. 간접금융은 시중은행에 정책자금을 제공한 뒤 해당 시중은행이 심사를 거쳐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수은은 한 시중은행과 협력해 수출 중소기업 등을 상대로 간접 대출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산은은 “(간접금융을 담당하던) 정책금융공사를 (산은이) 통합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수은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수은이 똑같은 업무를 시작해 안타깝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금융업계에선 이번에 이 회장이 합병 문제를 거론한 것은 산은의 설 자리가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개발 시대에는 산은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최근 들어선 기업 구조조정으로 업무 범위가 좁아지고 있다. 기업대출 같은 업무에서는 일반 은행과 경쟁해야 하는데 영업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다.
수출입은행 내부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 이 회장의 목소리가 작지 않은 만큼 그의 발언에 힘이 실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최근 들어 산은이 해외 기업설명회(IR)에서 수은의 지분 23%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은근히 홍보하고 있는 것도 불만사항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로선 산은과 수은을 사실상 같은 금융기관으로 인식하고 산은으로 물량을 몰아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두 기관의 합병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힘들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해관계자가 많고, 공기업 지방이전이라는 이슈와도 묶여 있다. 두 은행의 주무 부처가 기획재정부(수은)와 금융위원회(산은)로 갈려 있어 자칫 부처 간 힘겨루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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