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2 대항해 시대' 우주탐사 경쟁, 한국은 뭐하고 있나

입력 2019-09-11 15:51   수정 2019-09-12 00:07

‘한국 최초 달 궤도선’ 발사가 내년 말에서 2022년 7월로 또 미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상세 설계 과정에서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에서는 달 탐사 계획이 정권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달 탐사 계획을 처음 제시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2020년 달 궤도선 발사, 2025년 달 착륙선 발사가 목표였다. 그 뒤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에 맞춘다는 이유로 궤도선 발사와 착륙선 발사 계획을 2017년, 2020년으로 앞당겼다. 이 일정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변경됐다. 궤도선과 착륙선 발사를 2020년, 2030년으로 각각 늦춘 것이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앞 정권 계획을 적폐인 양 바꾸다보니 한국에서 우주 개발은 물 건너간 것이란 체념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한국이 이러는 사이 밖에서는 달을 향한 경쟁이 뜨겁다. 중국은 올해 들어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선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4월 달 탐사선을 보냈고, 인도는 7월 달 탐사선과 착륙선을 동시 탑재한 ‘찬드라얀 2호’를 발사했다. 미국 러시아 일본 등에 이어 달 탐사 경쟁에 뛰어드는 국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앞으로 국가의 운명은 다가올 우주시대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첨단기술 개발과 새로운 자원 확보를 위해 우주탐사는 필수가 되고 있다.

중요한 건 ‘빅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국가적 역량을 모아 대항해 시대의 문을 연 포르투갈, 스페인과 해양 진출 금지로 돌아선 명나라 때 중국이 좋은 사례다. 이 상반된 선택이 동서양의 운명을 바꿔놨다. 우주탐사는 ‘제2의 대항해 시대’로 불린다. 소련이 쏘아올린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에 미국이 유인 우주선의 달 착륙으로 대응하면서 우주 경쟁이 시작됐다. 당시 달 탐사 성공은 지금까지도 미국 과학기술 경쟁력의 든든한 인프라가 되고 있다.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도전적인 리더십과 지속적인 지원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우주 탐사는 이제 정부의 독점 영역도 아니다. 해외에서는 대기업들이 우주에 뛰어들고 벤처기업과 스타트업도 쏟아지고 있다. 우주산업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도 우주를 선점하는 국가가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강대국·강소국 할 것 없이 우주산업 시대로 질주하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심우주(深宇宙: 달 밖의 우주) 개발의 전초전인 달 탐사가 정치적으로 오락가락해서는 기업들도 우주에 뛰어들기 어렵다.

‘우주청’ 신설을 말하지만 조직만으로는 성공적인 우주 개발을 담보할 수 없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을 우주 개발 비전과 지원, 그리고 이를 끌고나갈 국가적 리더십이 먼저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우주 탐사 경쟁에서 낙오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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