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도발, 삼성전자의 무대응. 8K TV 화질을 둘러싼 가전 라이벌 간 공방은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9’의 핫 이슈였다. 단순 신경전 이상의 포석이 깔려있다. 8K TV 글로벌 시장 개화를 맞아 ‘유리한 전장(戰場)’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샅바 싸움이란 분석이다.
12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LG전자가 IFA 전시장에 양사 8K TV를 나란히 배치한 건 인상적 사건이었다. LG TV에는 ‘진짜(Real) 8K’, 삼성 TV엔 ‘다른(Other) 8K’ 표지판을 붙였다. 각각 화질 선명도(CM) 90%, 12% 표시와 함께 한 쪽은 국제 표준을 충족했으며 다른 한 쪽은 그렇지 못했다는 설명도 넣었다.
비교 대상으로 자사 액정표시장치(LCD) TV인 나노셀 TV를 내세운 점이 특히 의미심장했다. “닭 잡는 데 굳이 소 잡는 칼을 쓸 필요 없다”는 속내를 담은 셈이다. 기술력에서 한 수 위로 자부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까지 갈 것도 없이, 동급 라인업에서도 화질로 삼성을 압도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평가했다.
8K는 총 3300만개 화소 이상의 수퍼 울트라 고화질(SUHD) 디스플레이를 가리킨다. LG가 “삼성 8K TV는 진짜 8K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화소 수만 충족했을 뿐, 국제디스플레이계측위원회(ICDM)의 8K 기준인 ‘CM 50%’에 미달했다는 것이다.
삼성은 ‘1위 흠집 내기’로 치부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글로벌 시장 1위임을 앞세웠다. IFA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한 사장은 이러한 자신감에 바탕해 “(LG의 주장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ICDM의 CM 기준치에 미달한다는 주장도 “화질 인증기관은 없다”며 일축했다. 공식 표준이 없는 상황에서 8K 화소 수를 충족한 데다 소비자들 선택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삼성 QLED TV는 성장세가 뚜렷하다. 올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프리미엄TV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갖춘 게 주효했다. QLED TV가 앞장서 8K TV 시장 파이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LG는 삼성의 TV 1위 독주가 신흥 시장에서 끼워 팔기 등으로 ‘점유율 관리’를 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LG전자의 또 다른 공격 포인트는 OLED와의 기술력 차이다. LG는 QLED TV는 OLED가 아닌 LCD TV일 뿐이라는 취지의 광고도 시작했다. IFA에서의 기세를 몰아 추석 연휴 직후인 오는 17일 여의도 LG 트윈타워에서 품질 차이를 설명하는 자리까지 마련했다.
QLED TV는 LCD 패널에 퀀텀닷(QD) 필름을 붙인 제품이다. 스스로 빛을 내(자발광) 백라이트(광원)가 필요 없는 OLED와 달리 QLED TV는 백라이트가 필수다. 이처럼 기술적 한계가 있지만 “마치 OLED의 일종인 것처럼 명명해 소비자들에게 혼동을 줬다”고 LG전자는 지적해왔다.
사실 이같은 ‘OLED-QLED 논쟁’은 새로운 논점이 나온 게 아니다. 그럼에도 글로벌 TV 1·2위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해외 전시회까지 가서 이례적으로 강하게 맞붙었다. 진짜 이유가 뭘까. 본격화되는 8K TV 시장을 변곡점으로 판단,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번 IFA 2019는 8K TV 대중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LG전자뿐 아니라 하이얼·TCL 등 중국 업체들도 기술력이 크게 올라온 상용화 수준의 8K TV를 대거 선보이면서다.
싸움은 홈그라운드에서 맞붙는 게 중요하다. 8K TV 경쟁에서 LG가 OLED 기술력 우위로 맹공을 펼치는 것도, 삼성이 시장 우위와 함께 마이크로LED 등 새로운 폼팩터(제품 형태)를 언급하며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도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OLED가 기술적으로 우수한 것은 사실이나 QLED가 판매량을 크게 늘리며 경쟁력을 입증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추세대로면 ‘무난하게 지는 게임’을 하게 된 LG가 판을 흔들어보는 것이란 관측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가 품질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 만한 8K TV 방송 콘텐츠가 아직 부족하다”며 “당장은 화소 수나 CM, OLED냐 LCD냐 못지않게 2K·4K 콘텐츠의 업스케일링(화질 개선) 기술이 중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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