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제네시스도 고전한 유럽, 중국차가 과연?

입력 2019-09-14 08:30   수정 2019-09-1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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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치(紅旗)' 슈퍼카 S9 및 대형 SUV E115 EV로 도전
 -일본과 한국 프리미엄 실패 반면교사 삼아

 지난 2015년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에게 뼈 아픈 일이 벌어졌다. G80를 영국에 내놨지만 3년 간 50대 판매라는 치욕(?)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슈퍼카 판매보다 적은 기록으로, 유럽의 높은 프리미엄 제품 장벽을 실감해야 했다. 물론 제네시스만 유럽에서 쓴맛을 본 것은 아니다. 앞서 진출했던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도 결국 유럽에서 발을 뺐고, 렉서스도 이름만 기억될 뿐 도로에서 존재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오랜 시간 유럽은 다양한 프리미엄 브랜드의 치열한 생존 역사를 이어온 곳이다. 140년 전 자동차 초창기 시절부터 모두가 프리미엄 기치를 내걸며 등장했고 시간이 흐르며 인수 및 합병 등으로 역사가 지속된 만큼 브랜드의 존재감이 중요한 시장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라는 브랜드도 이제야 유럽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가운데 제네시스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덜컥 투입했으니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일부 유럽 언론은 '무모함'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유럽 프리미엄 시장을 결코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아픔을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현대차 특유의 문화가 발현돼 2020년 유럽 재진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주요 공략 시장도 영국, 독일 스위스 등을 지목하고 해당 국가를 중심으로 제네시스 거점을 만들기로 했다. 더불어 제품도 PHEV, EV 등의 파워트레인 다양화와 함께 세단 외에 SUV를 갖춰 이미지를 다시 끌어 올릴 준비가 한창이다. 이른바 유럽 프리미엄 공략을 위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제네시스 브랜드의 유럽 재진출이 계획된 시점에 중국 제일자동차(FAW, First Automobile Works)도 유럽 내 프리미엄 브랜드 런칭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1일 개막한 2019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홍치(紅旗)' 브랜드로 내놓은 슈퍼 스포츠카 S9과 대형 SUV 전기 컨셉트 E115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단순한 눈 요기가 아니라 2021년 양산에 돌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려는 제품이다. 이를 위해 FAW는 홍치 E115 대형 SUV 전기 컨셉트에 1회 충전 최장 600㎞ 수준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지능화된 자율주행 기술을 넣겠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FAW가 '홍치'의 프리미엄 육성을 위해 투입할 제품의 성격이다. 제네시스가 세단으로 처음 진출했던 반면 홍치는 애초부터 고급 스포츠카와 대형 SUV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컨셉트로 선보인 제품이 유럽 내 뜨거운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시장 진출의 첨병이 스포츠카와 고급 대형 SUV라는 점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FAW그룹 슈 리안핑 회장은 현장에서 "S9은 새로운 V8T 하이브리드 동력계를 갖춘 S시리즈의 첫 번째 제품으로,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술이 반영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홍치'라는 브랜드는 중국 태생이지만 제품 개발은 대부분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 출신임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유럽인의 손으로 개발한 뒤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에서 생산하고, 여기서 확보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다시 유럽을 공략한다는 의미다. 홍치 관계자는 "후발 주자에게 프리미엄 브랜드라도 가격 경쟁력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 내 비용이 오른 게 사실이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를 고려하면 여전히 생산 부문에선 매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홍치 S9은 V8 휘발유 엔진에 여러 개의 전기모터가 결합돼 최고 출력이 무려 1,400마력에 달한다. 덕분에 0-100㎞/h 도달은 불과 1.9초로 짧다. 최고 시속도 400㎞/h에 이를 만큼 하이퍼카로 분류된다. 탄소섬유 차체와 버터플라이 도어 등이 적용되며 예상 가격은 약 26억원에 이른다. 유럽 소비자에게 제품과 브랜드를 빠르게 알리려면 강렬한 고성능이 필요하다는 점을 파고든 셈이다. 실제 유럽은 죽음의 도로로 불리는 뉘그부르크링 서킷을 찾는 일반 소비자가 적지 않다. 또한 수많은 튜닝 엔지니어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고성능에 집중하는 곳이다. 심지어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현대차도 고성능 브랜드 'N'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음을 감안할 때 유럽 소비자에게 자동차의 여러 매력 중 하나는 '고성능'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홍치 입장에선 고성능 하이퍼카로 진출 초기부터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방법이 유리했던 셈이다.  

 이런 특징은 E115 컨셉트에도 반영됐다. AWD 방식으로 0-100㎞/h 도달 기록이 4초 미만이라는 게 홍치의 설명이다. 게다가 디자인은 영국 럭셔리 브랜드 롤스로이스 출신 '질리스 테일러'가 맡았다. 중국의 롤스로이스를 추구하는 홍치가 실제 롤스로이스 출신 디자이너를 영입해 유럽 시장을 넘보는 셈이다. 앞서 진출한 일본과 한국이 유럽 내 주력 프리미엄 제품과 곧바로 경쟁하는 구도를 잡으려다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홍치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대형 고성능 전기 SUV와 하이퍼카로 분류되는 스포츠카를 무대에 올렸다는 뜻이다. 

 물론 2년 후 홍치의 유럽 진출이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쟁쟁한 아시아지역 프리미엄 브랜드도 독일과 영국의 프리미엄 자동차 기세에 눌려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퍼카와 고성능 대형 전기 SUV로 접근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홍치의 기대감이다. 그리고 이면에는 설령 주목받지 못해도 된다는 생각도 있다. 유럽에서 '홍치'라는 브랜드가 일본 및 한국의 프리미엄 제품과 동등한 수준의 인지도만 얻어도 훗날 렉서스 및 제네시스 등과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니 말이다. 1960년 독일 라이프치히 모터쇼에 등장했다 자취를 감췄던 홍치가 다시 독일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이자 배경이다. 

 권용주 편집위원(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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